엄연히 상대방이 있는 게임에서 설익은 내용을 흘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 일이 최근 두번이나 한일 협상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지난달 29일 한일 재계회의. 오후3시 도쿄에서 시작된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전경련은 ▶양국기업의 전략적 제휴와 한.중.일 자유무역지대 설치 ▶엔 국제화.아시아통화기금 설립 ▶기업구조조정에 일본기업 참여확대를 골자로 한 발표자료를 내놓았다.
하지만 정작 합의내용은 달랐다.
자유무역지대는 경제적 효과에 관한 '공동연구' 를 조속히 착수한다는데 그쳤다.
양국의 전략적 제휴도 전경련과 게이단렌 (經團連) 실무관계자로 구성된 기업경영연구회를 통해 '어떤 업종이 적당한 지를 검토한다' 는 수준이었다.
"엔을 아시아 결제통화로 사용하자" 고 제안한 것은 한국측이었으며 일본측은 "엔을 아시아 결제통화로 만들 생각은 없으나 엔 국제화는 계속 추진하겠다" 는 기존의 공식입장만 반복했다.
약 한달전 한일 정상회담때 합의본 일본 수출입은행의 30억달러 대한 (對韓) 지원에 대해서도 일본측은 마음이 편치 않다.
당시 한국 정부는 "30억달러중 27억달러는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언타이드 론이고 금리도 파격적으로 낮게 결정됐다" 고 '홍보' 했다.
하지만 일본측은 "언타이드론은 23억달러이며, 금리는 지금부터 협상해야 할 사안" 이라고 말한다.
이 두가지 사안을 곰곰이 뜯어보면 한국은 희망사항을 합의사항 처럼 발표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 언론이 한일 재계회의와 30억달러 금융지원을 크게 다룬 반면 일본언론들은 차분히 취급한 데서도 그런 문제가 읽혀진다.
일본과의 협상에는 조용한 막후협상이 효과적이다.
"내가 해냈다" 식의 자랑은 해가 될 뿐이다.
도쿄에서는 "한국의 협상전략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보다 훨씬 후진적" 이라는 소리까지 들린다.
이철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