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회장,대북경협 내용과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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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주영현대 명예회장과 김정일 (金正日) 총비서의 만남을 계기로 현대의 대북 (對北) 경협사업이 획기적인 전기를 맞고 있다.

이는 또 경제협력 전반에도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 정몽헌 (鄭夢憲) 회장도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에서 "金총비서가 금강산 관광개발 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사업의 성공을 약속했다" 고 밝혔다.

이같은 북한측의 적극적인 자세와 함께 현대의 경협사업이 관광은 물론 자동차조립.건설.통신.유전개발 등 다방면에 걸쳐 포괄적으로 추진되는 점도 기존의 남북 경협사업에선 볼 수 없는 진일보한 점으로 평가된다.

현대측에 따르면 북한측과 합의된 사업은 금강산 개발 이외에도 ▶유전개발 ▶화력발전소 건설 ▶통신 ▶해외 건설시장 공동진출 ▶자동차 조립 ▶자동차 라디오 생산 ▶고선박 해체 등 현대의 계열 사업분야와 연관된 여러 업종에서 다양하게 이뤄졌다.

특히 서해 지역에 조성될 공단은 단순한 공장부지 확보 차원이 아니라 일종의 경제특구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곳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종합적인 경제특구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며 이미 이같은 내용의 제안서를 제출, 북측과 원칙적인 합의를 봤다는 것이 정몽헌 회장의 설명. 이렇게 될 경우 현대는 동해안의 금강산 지역을 독점 개발해 사실상의 관광특구로 조성하는 한편 반대편인 서해 지역에도 경제특구를 건설, 북한지역에 두곳 이상의 '현대 특구' 를 확보하는 셈이 된다.

금강산 지역의 경우 ▶모든 세금.관세.부과금 면제 ▶외화 반출입 및 송금 보장 ▶유선 통신의 설치와 이용 ▶은행.보험 등 특구에 걸맞은 특혜조치를 아태평화위원회측으로부터 이미 받아낸 점을 감안할 때 서해 공단지역에도 이와 유사한 수준의 보장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업들이 순조롭게 추진될 경우 현대는 물론 국내외 경제계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서해공단 조성 하나만 봐도 현대측은 도로.상하수도.전기 등 인프라를 담당하고 직접투자의 대부분은 관심있는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국내 업체들의 대북 진출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계획이 성사되기까지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선 우리와 체제가 완전히 다른 북한지역 내에서의 사업인 만큼 돌발적인 변수를 항상 경계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하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방세계에서의 사업이라면 합의가 깨질 경우 손해배상금을 받는 방법으로 보전할 수도 있지만 대북사업의 경우 약속불이행 때의 대응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현대측이 ▶발전소 건설은 지불보증이 확보됐을때 투자하기로 하고 ▶자동차조립공장은 시장 수출할당과 관세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짓기로 하는 등의 조건을 단 것은 이같은 우려에 대한 대비책으로 보인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현대측도 "김정일 총비서가 확인한 사항이므로 믿어야 되지 않겠느냐" 는 이상의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대가 기아자동차 인수를 비롯해 잔뜩 벌여놓은 상태에서 북한개발에 들어가는 엄청난 돈을 어떻게 조달할 지도 관심이다.

현대는 우선 외자조달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는 한편 부담을 덜기 위해 참여를 원하는 국내외 업체와 컨소시엄을 형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좀 더 사업이 구체화되면 해외 로드쇼를 갖는 방안을 검토중이며, 유전개발에 대해서는 이미 미국 업체들과 깊은 얘기가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현대가 2004년까지 9억6백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하는 등 북한측의 '현금확보 필요성' 에 따라 합의가 이뤄진 측면이 강하다는 점도 장래의 낙관을 불투명하게 하는 요소. 사업성 측면에서만 보면 현대가 대북 사업에서 과연 어느 정도의 실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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