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여당을 위한 3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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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 정부 들어 줄곧 이어져 온 여당공세.야당수세라는 정국상황에 다소 변화가 있을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다.

그동안 여당이 야당을 거세게 몰아쳐온 이른바 총풍 (銃風) 사건은 야당의 배후 관련이 확인되지 않고 고문문제라는 여권의 부담을 남기고 있다.

여당의 줄기찬 공세로 이뤄낸 야당의원 영입도 동쪽 민심의 악화라는 여당의 근심거리를 낳고 있다.

지난번 야당의 서울역집회 방해사건도 역시 정부.여당의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도청.감청문제, 우편물검열문제 등이 불거져 정부.여당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소위 세풍 (稅風) 사건은 여전히 여당의 큰 카드지만 이제 와서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공격자료가 여야 어느 쪽에 더 많은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당초 그렇게 우세하던 정부.여당의 입장이 왜 이렇게 됐을까. 여권도 이제는 집권후 8개월의 정국운영을 결산해 보고 교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여당이 공세의 입장에서 갑자기 수세로 몰리는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여당이 되고서도 오랜 야당체질을 버리지 못했고, 여당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하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음 세가지 사항을 생각해 보자.

첫째, '말 (言) 의 관리' 문제다.

야당과 달리 국정을 맡은 여당은 근거가 확실하고 결과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총풍' 사건에서 보듯이 여당은 결과를 보기도 전에 일제히 공세부터 퍼붓고 나섰다.

'이회창 (李會昌) 배제' 니 국기문란이니 하는 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공격자료가 포착되면 공세부터 취하고 보는 야당체질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실체확인도 하지 않고 먼저 나팔부터 부는 야당식의 '선 (先) 나팔주의' 로 인해 이젠 거꾸로 야당측의 사과요구를 받는 입장에 몰리고 만 것이다.

이번뿐 아니라 식수 (食水) 댐 경우처럼 다른 정책문제나 현안에 관해서도 너무 말을 앞세우다 손해를 본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원래 여당은 같은 말을 해도 야당보다는 덜 자극적이고 여유를 두는 말을 하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선나팔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둘째, 여권 내부의 역할분담이 아직 제대로 안돼 있는 듯한 점도 상황을 꼬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야간에 치고받는 정쟁사항에 대해서는 청와대나 내각.안기부 등은 점잖게 빠져 있어야 하고, 정당 내부에서도 대변인이 할 말과 당대표가 할 말이 따로 있는 법이다.

그러나 최근 보면 여당에선 대변인이 나서면 충분할 일에 총재대행이 연달아 발언하고, 정당끼리 치고받는 일에 청와대보좌진의 발언도 심심찮게 나온다.

정부 방침이나 정책문제는 내각과 관련 장관의 발언이 앞서고 청와대보좌진은 배경설명 또는 보완설명을 하는 것이 상식이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본다.

여권 전체의 역할분담체제가 안정.활성화돼야 팀워크도 이뤄지고 힘도 생긴다.

셋째, 지금껏 여당은 정치를 너무 '게임' 으로만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게임이라면 승부고, 이겨야 한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늘 이기는 정치만 추구하면 위험하고, 경우에 따라 이겨서 화 (禍)가 될 수도 있다.

여당이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무릅쓰며 의원숫자 불리기를 해온 것도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국회주도권을 잡자면 물론 의원숫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숫자가 많다고 반드시 '일' 이 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단독국회는 하기 어려운 게 우리 실정 아닌가.

게다가 그 숫자확보 때문에 잃은 게 얼마인가.

영남쪽의 민심악화, 사정의 편파성시비, 검찰.국세청 등에 대한 뒷말…등등 의원 몇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손해를 본 게 아닐까. 야당의원과 자치단체장 영입을 동서화합이라고 하지만 한 쪽의 정복과 다른 쪽의 투항으로 비춰지면 화합이 아니라 '앙심의 축적' 을 부르기 쉽다.

최근 영남민심 문제도 그런 까닭으로 봐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여당은 더 좋은 여당, 더 일 잘하는 여당, 더 국민신망이 높은 여당이 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인 야당을 맥 못추게 하고 논리적으로 꼼짝없이 몰아세운다고 좋은 여당, 강한 여당이 되지는 못한다.

야당이 무력 (無力) 해지면 잇따라 여당도 할 일이 없어지고 결국엔 의원도 국회도 무력해지고 만다.

바람직한 여야관계, '일' 이 되도록 하는 정국운영, 여권 내부의 적절한 역할분담체제 등에 관해 여당이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빨리 한단계 더 성숙하고 노련해지기를 바란다.

그것은 여당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송진혁(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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