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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동신문 김정일,김정운 암시 ‘해와 별’ 8차례 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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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20면

‘위대한 수령과 당중앙의 호소를 받들고….’ 1974년 2월 14일자 노동신문 2면 사설에는 처음으로 ‘당중앙’이 등장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 당시 당 비서가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추대된 다음날이었다. 비밀리였다. 이후 노동신문에서 당중앙은 노동당의 방침을 제시하고, 당을 지도하는 주체로 자리 잡았다. 당중앙을 당 중앙위원회로 볼 수밖에 없었다.

김정운 후계- 선전...선동戰 시작됐다

남한 정부가 이 당중앙이 김정일로서 후계 코드가 숨어 있음을 파악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 이상이 지난 뒤였다. 강인덕 당시 중앙정보부 북한국장(전 통일부 장관)은 “노동신문의 당중앙이 지시만이 아니라 행동의 주체로 파악되면서 김정일이 당중앙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 기관지의 행간 읽기를 통해 얻은 개가였다. 북한은 80년 10월 6차 당 대회에서 김정일의 후계를 공식화할 때까지 그의 후계 내정을 숨겼다. 내부적으론 회의와 강습 등을 통해 주민들에게 부자 후계 구도를 서서히 심어 왔다.

김정일의 셋째 아들 김정운이 3대 후계자로 결정됐다고 국정원이 밝힌 지금 노동신문에는 과거의 당중앙과 같은 명확한 지칭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올 들어 부자 후계 구도를 암시하는 표현들이 부쩍 눈에 띄고 있다. 후계 분위기 띄우기 색채가 없지 않은 것 같다. 올 들어 나오기 시작한 ‘해와 별’은 대표적이다. 1월 12일자, 3월 14일자 노동신문 ‘정론’은 ‘해와 별 빛나는 조선의 앞날’과 ‘해와 별 찬란히 빛나는 우리 혁명의 수뇌부’란 표현을 썼다.

북한에서 해(태양)와 별은 김일성 부자로 인식돼 왔다. 태양은 김일성의 대명사다. ‘주체의 태양’‘20세기 태양’ 등의 표현을 쓴다. 김정일은 ‘광명성’ ‘장군별’ ‘백두성’을 비롯해 별로 묘사돼 오다 지금은 곧잘 태양으로 견줘진다. ‘선군 태양’ ‘21세기 태양’ 등이다. 그런 만큼 ‘해와 별’의 ‘별’은 김정일 후계자를 뜻하지 않느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해와 별’은 지금까지 여덟 차례나 등장했다. ‘우리 혁명의 수뇌부’와 함께 쓰고 있는 점도 주목거리다. 노래(내 나라의 푸른 하늘)와 서사시(이 세상 끝까지, 세월 끝까지)에도 들어갔다.

이 표현이 정론에 다섯 번이나 들어간 점도 흥미롭다. 북한의 조선말 대사전에 따르면 정론은 ‘사회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의 본질을 밝혀내고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입장을 강렬하게 표명하는 선동적이며 호소적인 기사’다. 당의 방침이 나오는 사설과 달리 선전·선동의 마당이라는 얘기다. 내부적으로 후계 구도의 땅고르기를 하는 작업과 맞물려 있을지 모른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 연구위원은 “북한 매체상의 대명사는 당 선전선동부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며 “당 차원에서 김정일을 해로,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김정운을 별로 지칭하기로 방침이 정해진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와 별’이 들어간 다섯 개의 정론 가운데 세 개를 노동신문 논설원인 송미란이 쓴 점도 눈길을 끈다. 그는 후계 문제를 가장 많이 다룬 필자다. 미 국가정보국장실(ODNI) 산하 오픈소스센터는 송미란을 아예 후계 전문 작가(succession writer)라고 할 정도다. 그는 2002년 10월 6일자 노동신문 정론(빨찌산의 아들)에서 김일성이 “조선 혁명을 내가 하다가 못하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하다가 못하면 손자가 해서라도 최후 승리를 이룩해야 할 의지를 표명했다”고 소개했다.

3대 세습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기사다. 당시는 김정운의 어머니인 고영희(2004년 사망)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6일자 정론(강선의 불길)에서는 “혁명 위업을 계승하는 제3세, 4세들의 평균 나이가 25세”라고도 했다. 김정일이 건강 이상설 이후 공개 활동을 재개할 무렵 나온 이 정론은 북한이 후계 구도에 다시 불을 붙이려 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계승’ ‘3, 4세’ ‘25세’는 일반론이라기보다 김정운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지난해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송미란은 올 3월 21일자 정론(뿌리가 되라)에서도 “혁명의 3세, 4세가 강성대국을 떠메고 나갈 주인공으로 어엿하게 자라났다”고 했다. ‘혁명 3, 4세’ ‘새 세대’ 등의 강조는 새 후계 체제와 더불어 북한 전반에 세대 교체 바람이 불고 있거나 예고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백두의 혈통·전통’과 ‘만경대 가문·혁명 일가’ 표현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점도 특징이다. 올 1~7월 노동신문 게재 건수가 22건이나 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3건이었다. 만경대는 김일성의 생가이고, 김정일은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북한은 주장하고 있다. 이들 표현 뒤에는 ‘대(代)를 잇는다’는 술어가 따르기 일쑤다. 이 역시 3대 후계 구축 작업과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후계 구도를 시사하는 노래도 나오고 있다. 6월 19일 노동신문에 소개된 ‘사회주의 너를 사랑해’는 대표적이다. 3절로 된 이 노래의 가사는 1절에 ‘수령님 세워주신 해빛 밝은 집’, 2절에 ‘장군님이 지켜주신 집’, 3절에 ‘선군의 붉은 기가 휘날리는 집’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1, 2절에 김일성과 김정일을 등장시킨 뒤 3절에 ‘선군의 붉은 기’만 적어 놓았지만 3대 세습을 암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노래 전의 ‘발걸음’ 노래도 주목을 끌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우리 김대장 발걸음’의 김대장은 김정운을 지칭하는 것으로 국내외 언론은 전한다. 그러나 노동신문 조사 결과 김대장은 김정일로 지칭돼 왔다. 노동신문 2000년 3월 21일자는 ‘오늘의 김대장이신 김정일 장군’을, 올해 6월 28일자는 ‘김대장이신 김정일 장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가사가 후계를 암시하고 있다. 1절과 2절이 ‘2월의 정기 뿌리며’ ‘2월의 기상 떨치며’로 돼 2월에 태어난 김정일을 칭송하지만 3절은 ‘2월의 위업 받들어’라는 표현을 썼다. 후계를 넌지시 비추는 대목이다. 보일 듯 말 듯한 후계 구축 정지 작업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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