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쟁아닌 정책감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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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제부터 시작된 국회의 국정감사는 여야 정권교체후 첫 사례여서 매우 의미있는 실험이 될 것이다.

지난날 창 (槍) 을 쥐었던 구야당은 이제 국정담당자가 돼 방패를 들고 있다.

방패를 들었던 구여당은 지금 창을 세우고 있다.

절반의 경험에 머물던 여야가 이번 국감을 통해 역지사지 (易地思之) 로 한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국감은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국정을 감시.검증하고 보완.개선하는 작업이다.

특히 이번 국감은 경제위기를 맞은 후 처음 실시하는 국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감은 지난 1년간의 위기극복 대책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그 바탕 위에서 더 합리적.효율적인 정책대안을 모색하는 국감이 돼야 할 것이다.

국감도 정치행위인 이상 이른바 총풍 (銃風).세풍 (稅風).고문시비.서울역 야당집회 방해사건 같은 시국현안을 비켜갈 수는 없다.

이런 문제들은 국감을 통해 진상을 더욱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기도 하다.

그러나 국감이 여야가 정국 주도권을 다투는 정쟁 (政爭) 의 장 (場) 이 돼서는 안된다.

국감의 중심노력은 정책실적.예산사용, 공무원의 공직관리.비리여부 같은 감시대상에 집중돼야 할 것이다.

국감은 바로 이런 일을 위한 것인데 그 소중한 20일을 정쟁으로 허송한다면 좋아할 사람은 부실한 행정부 담당자들 뿐이다.

여야가 국감의 본질적 기능을 잘 수행하려면 과거의 국감이 보여준 단점과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선 행정부를 꾸짖으려면 의원은 사안에 대해 그들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평상시의 꾸준한 국감공부가 필요한데 이번 경우 장기간의 여야 대립으로 의원들이 충분한 국감준비를 못한 것 같아 걱정스럽다.

의원들은 이른바 한건주의식의 소 (小) 영웅주의나 스타의식을 버리고 정확한 자료와 정보에 입각해 국정을 파고드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근거없는 과잉폭로, 비판을 위한 비판, 기업의 뇌물을 유도하기 위한 질문, 장.차관이나 기관장에 대한 어이없는 호통, 피감 (被監) 기관의 향응 같은 지난날의 불쾌한 국감 풍경이 결코 되풀이돼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부터는 여야가 국감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지난해 국감의 지적사항에 대한 개선정도를 따지도록 촉구하고 싶다.

달라지지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국감을 하는가.

국감이 끝날 무렵엔 문책범위를 엄정히 가려야 한다.

부실의 정도가 심한 기관장이나 관련공무원에 대해선 국회가 해임건의를 추진해야 한다.

감사를 받는 행정기관들도 과거처럼 현장모면식의 불성실한 답변이나 소홀한 자료제출로 국감을 넘기고 보자는 태도로 임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여야.피감기관 모두 과거와는 다른 자세로 진일보한 국감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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