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중국 농부의 '窮卽通'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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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베이징 (北京)에서 야간기차를 타고 14시간을 달린 끝에 도착한 고도 (古都) 시안 (西安) .여장을 풀기가 바쁘게 세계 8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진시황릉 병마용 (兵馬俑.실물크기의 병사와 말 등의 인형) 부터 찾았다.

"단돈 1백위안 (약 1만5천원) .병마용 발견자가 직접 사인해 주는 책입니다. 사진을 함께 찍는 특전도 드립니다. " 차에서 내리자마자 장사꾼의 호객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아, 그렇구나. 그때 그 농부가 벌써 대머리 할아버지가 됐구나. 지난 74년 다른 농부 2명과 함께 우물을 파다 병마용을 발견한 양취안이 (楊全義.70) 앞에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호객꾼이 이끄는 대로 楊노인 옆자리에 털썩 앉혀져 기념사진 한장 찰칵하고선 1백위안을 냈다.

뒤늦게 직업정신이 발동해 책을 언제부터 팔기 시작했으며 하루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물어봤다.

그러나 그는 대답 대신 헛기침만 해댔다.

주변에 물어본 결과 楊노인의 수입은 대단했다.

추석 등 성수기에는 하루 1백권 이상이 팔린다.

그의 몫은 권당 50위안. 하루 5천위안이란 계산이 나온다.

시안 일반 시민의 한달 수입이 1천위안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돈이다.

74년 병마용 발견 당시 楊노인이 정부로부터 받았던 격려금은 고작 10위안이었다.

병마용 발견자 3명은 모두 책에 사인하고 사진모델 서는 일로 부자가 됐다고 한다.

장사에 나선 동기가 더욱 흥미롭다.

이들은 96년께 중국 당국의 보조금이 끊기면서 궁여지책으로 책 사인판매에 나섰다고 한다.

보조금이 계속 나왔다면 '사업 아이디어' 도 안 나왔으리라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우리도 楊노인처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를 짜낼 수는 없을까. 안개가 자욱한 고도 시안에서 '궁하면 통한다 (窮卽通)' 는 옛말을 새삼 떠올려 보았다.

시안=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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