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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64곳 모습담은 새책 '서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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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오늘을 열어가는 열쇠가 과거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이상해 교수 (한국건축사) 와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 안장헌씨는 이러한 '과거' 의 소재로 조선시대 서원 (書院) 을 택했다.

93년 봄부터 순례한 장소만 1백여곳. 이교수는 자료를 정리하고 안씨는 사진을 찍으며 5년여를 함께 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서원' (열화당刊) . 서원은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고 선현들에게 제사지내던 곳. 관학기관인 향교와 달리 사대부들이 자발적으로 향촌공동체를 이끌며 성리학의 이상을 구현하려 했다.

책에는 현존하는 주요 서원 64곳이 망라됐다.

각 곳의 연혁.봉향 (奉享) 인물.건축 공간을 아우르는 글과 실제 측량에 기초한 상세한 배치도, 5백50여컷의 컬러사진이 담겨있다.

그러나 책의 진가는 이같은 외형적 '수고' 보다 내면적 '성찰' 에 있다.

기존의 관련서가 주로 서원의 건축기법을 다룬 반면 저자들은 선비정신의 정수를 찾으려고 한다.

"맑은 바람이 불고 달이 비추는 누각과 강당 대청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동학들과 격의없이 토론하던 선비들의 기개와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저자들은 조선후기에 엄청나게 수효가 급증하면서 붕당.파당, 또는 가문결속의 근거지로 변질해 급기야 흥선대원군이 철폐조치까지 내린 서원의 폐단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오염되기 이전 서원의 순수했던 모습에서 오늘날의 위기를 헤쳐가는 혜안을 갈구한다.

경북안동의 병산서원. 자연스런 형상 그대로의 구불텅한 수많은 나무 기둥이 이층 누각을 떠받치고 있다.

복잡한 장식을 피하고 질박한 자연미를 수용한 선비들의 '맑은' 심성의 표징이다.

한국 최초 서원인 경북영주 소수서원의 입구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는 유생들이 마음을 다지는 '경 (敬)' 자가 새겨졌다.

전남장성의 필암서원은 정연한 좌우대칭 구조로 선인들의 단정하고 엄정한 풍취를 느끼게 한다.

저자들의 서원탐구는 현대로 이어진다.

온고지신 (溫故知新).법고창신 (法古創新) 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 자연을 그대로 수용하고 절제와 검소로 무장해 향촌공동체를 도모한 사대부 문화는 자연과 인간이 갈기갈기 찢긴 오늘날의 위기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된다고 제언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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