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봉사단에 쓰촨 소녀 ‘CHINA ♥ KOR’ 판화로 화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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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중국 쓰촨성 퉁지(通濟)소학교에 모인 아이들이 지난달 25일 임시로 세운 교실 앞에서 날개 옷을 입은 대학생 봉사단의 지도에 따라 율동을 배우고 있다. [펑저우=이충형 기자]

중국 쓰촨(四川)성 펑저우(彭州) 시 곳곳엔 컨테이너로 지어진 임시가옥들이 있었다. 지난해 5월 이곳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대부분 집들이 무너진 후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임시가옥 마을인 황춘(黃村)에 한국 대학생 20명이 나타났다. 컨테이너 집 밖에서 후텁지근한 여름을 식히던 사람들이 신기한 듯 이들을 쳐다봤다. 학생들은 노래를 부르며 이곳에 있던 아이들에게 풍선과 리본을 나눠줬다. 아이들은 금세 경계심을 풀었다. 수십 명이 몰려들어 선물을 달라며 손을 뻗었다. 학생들은 “내일 퉁지(通濟)소학교에서 다시 만나자”고 아이들과 약속했다.

학생들은 SK텔레콤이 후원하는 행복나눔재단의 대학생 봉사단 ‘써니’ 단원들이었다. 이들은 20여 명의 청두(成都)대 학생들과 닷새간 지진 피해지역 아이들에게 교육 봉사를 펼치러 왔다. 이곳에 SK건설이 짓고 있는 소학교의 담장도 칠한다. 펑저우는 지난해 대지진으로 80만 인구의 절반이 피해를 보았다. 피해 주민들은 무너진 집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학생들은 교육장인 퉁지소학교를 찾았다. 학교가 있는 펑저우 퉁지진(鎭) 중심가 건물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심하게 균열이 가 있었다. 건물마다 1층에는 지진으로 가게를 잃은 사람들이 옮겨와 영업을 이어갔다. 건축자재를 파는 류싱(劉星·28)은 “위험하다고 나라에서 거주하지 못하게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푸젠(福建)성 사람들이 와서 재건 작업을 하고 있는데 빨리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쓰촨 지역 일간지 ‘화서도시보(華西都市報)’의 타오링(陶玲) 기자는 “타 지역의 적극적인 재건 참여 덕분에 5년 이상을 예상한 복구작업이 2~3년이면 마무리될 전망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7월 22일

150여 명의 아이들이 교실로 모여 들었다. 지진 때 무너진 학교 건물 대신 운동장에 세운 임시교실이었다. 한여름의 컨테이너 교실 안은 가만 있어도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무더웠다. 학생들은 한국에서 일주일간 합숙하면서 준비한 프로그램들을 펼쳐놨다. 아이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이들은 함께 특수용액으로 판화를 그렸고 우유곽으로 저금통도 만들었다. 두 동생과 학교를 찾은 장사오줘(張少卓·여·15)는 판화에 ‘CHINA ♥ KOR’이라고 썼다. 한국을 좋아한다는 그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 저금통에 돈을 꽉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전날 임시가옥을 찾았을 때 “부모님이 감자 캐러 나가 집을 봐야 한다”던 황리(黃莉·여·11)도 이날 교실을 찾았다. ‘영어로 색깔 알아맞히기’ 퀴즈를 시작하자 “저요, 저요”라고 소리지르며 손을 뻗었다. 

◆7월 23~24일

전날 온 아이들 대부분이 다시 학교로 모여들었다. 30분 이상 걸어서 온 아이들도 많았다. 지진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한 손씻기 교육을 할 때 한 아이가 내민 손엔 손가락이 없었다. 김민지(여·21·해양대)씨는 “많은 아이의 팔에 지진 때 생긴 흉터들이 있었다”며 “해맑게 웃는 얼굴과 너무 다른 손이 슬펐다”고 말했다. 퉁지소학교 교사인 탄잉(譚英·여·37)은 “꾸준한 심리상담 등으로 정신적으론 아이들이 많이 회복된 상태”라며 “인근에 새로 지어질 학교로 옮기면 좀 더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빈농 가정이 많은 이곳 학생들은 정부로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보조받고 있었다.

◆7월 25일

교육이 끝난 아이들은 풍선에 자신의 꿈을 적어 하늘로 날렸다. 대부분은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고 적었다. ‘세계와 미래의 평화’를 소망한 아이도 있었다. 단원들은 아이와 주민들을 모아 공연을 펼쳤다. 사물놀이의 꽹과리와 장구 소리에 이어 마술이 펼쳐졌다.

남자 단원들은 요즘 중국에서 최고 한류 스타인 슈퍼주니어의 노래와 율동을 선보였다.

공연이 벌어진 임시교실 앞은 모처럼 사람들의 웃음과 박수소리로 들썩였다. 지진으로 친손녀를 잃었던 왕안슈(王安秀·여·55)도 외손녀를 데리고 학교를 찾았다. “당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맨발로 손녀를 찾아 다녔다”는 그는 “이젠 나를 비롯해 이웃 주민들도 희망을 찾아가고 있다”며 즐거운 표정으로 공연을 지켜봤다.

펑저우=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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