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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주한 미상공회의소 새회장 제프리 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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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말을 한국사람 뺨칠 정도로 유창하게 하는 미국인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암참) 의 새 회장이 됐다.

끗발이 센 것은 물론 영어짧은 사람은 잘 만나주지도 않던 암참 회장자리였던 만큼 의사소통에 문제없는 사람이 회장에 앉았다는 것 하나만 해도 뉴스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에서 18년간 일해온 제프리 존스 (46) 변호사. 기업이나 은행대표가 아닌 변호사가 암참 회장이 됐다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국인들의 심성까지 구석구석 짚어나간다.

국내에서는 말일성도 교회로 알려진 모르몬교의 선교사로 지난 71년에 2년간 한국에 왔었는데 그때 익힌 한국말 실력이란다.

[만난사람=이장규 부국장]

- 우리말을 그처럼 잘하니 언어장벽 때문에 한.미 양국 사이에 생겨나는 오해나 말썽은 이제 걱정 안해도 되겠습니다.

"사실 그동안 말 때문에 빚어졌던 불필요한 오해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 점에서는 내 나름대로 기여할 일이 있겠다 싶어 암참 회장자리를 기꺼이 맡았습니다.

어디 언어 뿐이겠습니까. 문화적으로 서로 이해하지 못하면 국가간에 진정한 상호 이해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

- 그동안 한국에 살면서 겪은 경험에서 하는 말입니까.

"그럼요.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합작사업 등을 논의할 때 서로 말이 안 통해 결렬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김치' 라고 하면 한국인에겐 모든 게 녹아있는 것이지만, 서양사람한텐 그저 고약한 마늘 생각밖에 나지 않아요. 이처럼 경험과 문화가 달라 말이 통하기 힘들고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참 회장이 한국말을 이해하면 양국 상공인들이 서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해갈 수 있을 거예요. "

- 혹시 미국 상공회의소의 인상이 한국사람들에겐 별로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듣다 마다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있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충분치 못해 생긴 오해도 많았지요. 내가 책임을 맡은 이상 암참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 뿐 아니라 실제로도 미국기업과 한국기업이 대치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심부름꾼 역할을 할 작정입니다. "

- 그동안 김&장에서 어떤 일을 주로 해왔습니까.

"주로 기업 인수.합병 (M&A) 관계 일을 했습니다. 소문난 큰 건은 거의 다 관여했습니다. M&A가 보기보다 굉장히 힘들어요. 보통 상담중인 10건 가운데 2개 정도 성공하면 성공률이 매우 높다고 보지요. "

-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일을 해오셨네요.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까. "내 경험으로 볼 때 적대적 M&A는 한국 상황에 안맞는 것 같습니다.

2년전 미도파사건이 단적인 실패 사례입니다.

실제로 적대적 M&A는 매우 위험하기에 미국서도 꺼리고 있고 안 하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당시 미도파가 M&A당했다면 훨씬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지금에 와서야 한국 사람들이 M&A를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기 시작했지, 그 당시만 해도 어림도 없지 않았습니까. 문화적 요인을 경시한 M&A는 결코 성공할 수 없어요. "

- 화제를 돌려보지요. 한국이 겪는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을 언제부터 예감하고 계셨나요.

"4~5년 전부터 어려움이 올 것으로 내다보고 경고해왔지요. 그 근거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한국 기업의 빚이 너무 많다는 점이지요. 계속 한국경제가 커지면 빚을 갚을 수 있지만 경제성장률이 떨어지면 무슨 수로 갚습니까. 둘째, 한국 기업에 너무 거품이 끼여 있었지요. 예를 들어 한국의 공장시설을 보면 너무 좋아요. 외국 기업이 와서 보면 전부 깜짝 놀랍니다.

이렇게 좋은 공장을 본 적이 없다고 해요. 출퇴근하는 자동차에 비유하면 티코나 쏘나타가 아니라 모두 벤츠나 BMW를 타고 출근하고 있는 격입니다.

더구나 이런 것들을 자기 돈으로 장만한 것이면 또 몰라요. 거의 남의 돈을 빌려 한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고 봐요. "

- 한국의 경제위기가 유동성 문제에서 비롯된 단순한 외환위기가 아니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환란은 나타난 결과적 현상일 뿐 진짜 문제는 한국경제가 근본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해소하기는 커녕 키워왔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 기아문제 처리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을 텐데요. 특히 포드 문제도 있고. "기아가 어려움에 빠져 정말 안타깝습니다. 암참 회장 자리에 있다고 해서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어려움과 국내 업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미국 포드가 기아를 인수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포드와 다른 국내 업체가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포드가 기아를 인수할 경우 자동차업계뿐 아니라 한국경제 전체에 매우 좋은 효과를 만들어낼 겁니다. 당장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투자에 적극성을 띨 것이고, 한국차가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데도 훨씬 부드러워지지 않겠습니까. "

- 포드가 요구하는 부채탕감액은 결국 8조원이 넘는 것인데,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요.

"그래도 부채탕감을 수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봐요. 정 문제가 된다면 인수한 기아가 흑자로 돌아설 경우 탕감받은 부채 중 일부를 갚겠다는 조건을 붙이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 최근 이헌재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을 만나 포드가 기아를 인수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얘기를 하셨다는 데 사실인가요.

"언론에 보도된 것은 뉘앙스가 다릅니다. 공정한 경쟁을 주장하는 마당에 특혜를 달라고 했을 리가 있습니까. 기아가 낙찰되지 않는 이유는 부채가 많기 때문이므로 누가 인수하든 부채탕감을 많이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더니 李위원장도 알았다고 하더군요. "

- 한국언론에 대한 불만이 많지요.

"옛날엔 좀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전에는 상당히 국수주의적이었지요. 사실 한국은 87년부터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그 전에는 언론사가 마음대로 쓰지 못했고 경험도 없었다고 봐야지요. 그때하고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고 굉장히 정직해졌다고 봅니다. "

- 그렇다면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 언론사의 보도 태도는 어떻게 보시나요. "나도 문제라고 느낍니다. 외국 언론사가 한국에 대해 제대로 취재했으면 합니다. 정확히 알아보지도 않고 함부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적 경제전문지조차 최근 보도에서 '외국인투자자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는 얘기를 '한국 정부가 외국인투자자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고 썼지요. 참 답답한 노릇이지요."

- 한국의 구조조정 진행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민간부문이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이 늦어지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팔려고 내놓아도 빚을 갚을 만큼 돈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로선 팔아도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그럼 기업입장에서 왜 팔겠습니까. 공공부문은 지금 잘하고 있다고 봐요. 특히 금융구조조정은 계획이 좋아 그대로 진행된다면 성공적입니다. 빅딜은 성사가 어렵다고 봐요.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실제적으로 어렵다는 뜻이지요. 과잉투자한 회사끼리 합병하면 무슨 실익이 있겠어요. "

- DJ 노믹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현재 금융구조조정 등 기본적인 방향은 잘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시장경제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일관되게 추진 한다면 결국 기업들이 따라 갈 수밖에 없다고 봐요. "

- 한.미 자동차협상이 잘 안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재 관세문제가 가장 현안이 되는 부분입니다. 한국의 승용차에 대한 관세는 8%이고 국제기준은 5%입니다. 미국은 3%로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있고요. 그외 담보나 근저당 문제의 이견은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관세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양국이 팽팽히 맞서 양보를 하지 않고 있어 협상이 제대로 안되고 있어요. "

- 한국보다 자동차 역사가 오래된 유럽의 관세가 10%인데 미국이 3%로 낮추라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요.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시장의 수입차 점유률이 1%가 안되지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이 미국차를 연간 몇백대 밖에 수입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자국시장에서 많이 팔고 있는데 대한 감정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강하게 나가고 있지요.

특히 미의회에 대한 로비 입김이 거센 미국자동차제조업자협회 (AAMA) 의 태도가 강경합니다. 반면에 한국의 재정경제부는 관세를 전체적으로 조정하면 몰라도 자동차 관세율만 떼어내 조정할 수 없다며 완강히 원칙만 고집하고 있습니다.이처럼 양측이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면 협상이 안됩니다.

자동차협상은 상징적 의미는 크지만 경제적인 실익은 별로 없습니다.

한국은 설사 관세를 내린다고 해도 큰 경제적 손실을 보지 않을 것으로 봐요. 설령 관세를 제로로 한다고 해도 미국 자동차가 한국시장을 휩쓸 수 있다곤 생각지 않습니다.

미국 역시 한국차 시장 같은 조그만 시장을 가지고 보복한다면 그 또한 말이 안됩니다. "

- 해결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원칙만을 내세워선 협상이 안됩니다. 경제적 실익, 즉 돈으로 풀어야 합니다. 서로 계속 싸우면 양쪽 다 손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미국은 301조니 뭐니 하는 보복 운운 따위는 하지 말아야 하고, 한국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관세율을 못 이기는 척하고 어느 정도 조절해 줘야지요. "

- 암참 회장으로 한.미업계의 긴밀한 상호협조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더 나은 한국을 위한 파트너십' 이라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암참 차원에서는 이제껏 트레이드 이슈란 연례보고서를 이름과 형식을 바꾸어 새로 발간하려 합니다. 한국의 전경련.상의 경제단체들과 협조해 각종 규정과 세제면에서 더 신뢰성 있고 이익을 볼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제안을 담도록 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서로 대립하는 것을 지양하고 어떻게 하면 서로 협조.협력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충분한 대화를 나눌 계획입니다.

요즘 한국에선 '오픈' 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우리 암참도 모든 한국인들에게 오픈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오해가 없어지고 협력할 수 있지요. "

정리 =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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