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학자금 대출은 환영 … ‘공돈 취급’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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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야심만만하게 내놓은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는 잇따른 친서민 정책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서민 가정 자녀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빌려주고, 원리금 상환을 취업 후까지 미뤄 주는 게 새 제도의 골자다. 기존 제도는 대출 즉시 이자를 내야 하고, 졸업하면 취업 여부와 상관없이 원금도 상환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제때 원리금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경우가 올해만 1만3800명이나 됐다.

그러나 새 제도가 시행되면 학생들은 학비 걱정 없이 학업에 전념하고, 학부모들은 씀씀이에 여유가 생겨 노후 대비도 가능할 거라고 정부는 내다봤다. 이렇게 좋은 제도라면 왜 진작 시행하지 못했나 싶을 정도다. 물론 당국이 검토조차 안 한 건 아니다. 막대한 재정 부담 탓에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다. 이번엔 “교육만이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다”는 대통령의 입장이 워낙 확고해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교육이 최고의 복지라는 새 제도의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앞서 유사한 제도를 시행했던 선진국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 갖가지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을 주문한다. 우선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대학생 194만 명 중 절반인 100만 명만 이용한다 쳐도 해마다 1조5000억원의 재정 부담이 예상된다고 한다. 정부는 얼추 8년 후부터 상환이 시작되면 부담이 더 늘지 않게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갈수록 악화되는 청년 실업 사태를 고려할 때 상환이 차질 없이 진행되리라 보기 힘들다. 금융위기를 맞은 미국에서 학자금 대출 부실이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젊은이들이 수천만원대 빚쟁이로 사회에 첫발을 딛게 되는 점 역시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장기에 걸쳐 나눠 갚는다 해도 주택 자금 등 다른 대출이 겹칠 경우 평생 빚에 허덕이며 살아야 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 부부만 해도 저서의 성공으로 졸업 13년 만에 겨우 학자금 대출을 갚았다지 않은가. 따라서 ‘대출=공돈’이 아니라는 인식을 학생들에게 확실히 심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