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5승 메이저특급 박찬호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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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올해 플레이오프는 보지말고 직접 뛰자고 선수들끼리 다짐했었는데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자니 역시 팀성적이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 LA 다저스의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팀의 플레이오프 탈락을 못내 아쉬워했다.

LA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이제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누구나가 인정해주는 1급투수. 94년 맨주먹으로 태평양을 건너와 마이너리그의 눈물젖은 빵을 씹던 박은 이제 다저스를 넘어 메이저리그 정상, 세계 정상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1일 (이하 한국시간) 로스앤젤레스 외곽 글렌데일에 위치한 그의 집에서 2시간 동안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올시즌 15승으로 지난해 14승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14승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빨랐다. 올해는 그에 따른 정신적 부담에다 허리부상까지 겹쳐 너무 힘들었다. 마이너리그 때 각오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최선을 다할 뿐, 서두르지 말자는 것이었다. "

- 전반기 부진 때는 배짱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없다는 등 주로 정신적인 문제점을 지적받았는데.

"허리가 아픈 상태에서 등판하니 자신감이 없고 배짱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

- 그러나 본인은 허리상태에 대해 계속 괜찮다고 하지 않았는가.

"시즌 개막전 때 '단 한번의 선발기회도 놓치지 말자' 고 다짐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랬다. 당시에는 팀에서도 계속 등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 에이스로 자리를 굳혔다. 달라진 팀내 위상을 피부로 느끼는가.

"코칭스태프의 신임이 두터워졌을 뿐 그런 변화는 못느꼈다. 오히려 감독이 바뀌고 선수들이 교체되는 등 많은 변화를 보며 나도 다저스가 아닌 다른 팀에서 뛸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지난해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

- 최근 케빈 말론 단장이 장기계약을 원한다고 발표한 것은 달라진 위상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장기계약 문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열심히 던져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목표일 뿐 계약은 내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 "

- 기술적으로 지난해와 달라진 점을 꼽으면.

"위기 때 더블플레이를 잡아내고 무사 만루에서도 무실점으로 막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것은 직구를 던지든 변화구를 던지든 무조건 스트라이크를 던져 정면돌파를 하는 것이다. "

- 지나치게 직구와 커브에 의존, 단조롭다는 지적도 있다.

"내년엔 체인지업을 가다듬어 더욱 많이 던질 계획이다. "

- 본받을 투수가 있다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존 스몰츠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케빈 브라운이다.

스몰츠는 빠른 공을 던지면서도 절묘한 제구력이 뛰어나고 브라운은 마운드 위에서의 자신감 넘치는 자세와 공격적인 피칭이 인상적이다. 지난 11일 샌디에이고에서 브라운과 맞붙어 이긴 경기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승리였다. "

- 누가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였나.

"단연 마크 맥과이어였다. 다른 타자와 상대할 때는 안타를 맞지 않기 위해 공을 던지지만 그에겐 홈런을 안맞기 위해 피칭을 해야 했다. "

- 올해는 마운드나 더그아웃에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과격한 몸짓이 많았다.

"본능적인 행동이다. 내가 그들과 같은 영어로 말하며 팀에 융화되는 것처럼 그들과 같은 몸짓으로 또 하나가 된다. 결코 다른 후배선수들이 나를 흉내내라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더 성숙해지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승부욕이 강한 야구선수로만 봐주길 바란다. "

- 앞으로의 일정은.

"다음주에 신체검사를 한다. 완전히 정상으로 나오면 미.일 올스타전과 방콕아시안게임에 모두 출전하겠지만 무리라는 판단이 서면 아시안게임에만 출전하겠다. 국가대표는 어린시절부터의 꿈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태극마크를 달고 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진 만큼 사명감도 느끼고 기분도 좋다.

어떤 경우든 11월에는 한국에 갈 것이다. "

- 결혼은.

"해야 할텐데 아직 진지하게 사귀는 여자는 없다. 투수의 아내는 승패에 따라 변화가 심한 남편의 기분을 잘 이해해 주는 여자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

-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변함 없는 성원에 감사드리고 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둬 보답하겠다. "

LA지사 = 김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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