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세 배분 지자체 이관 요양원·재활원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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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부산의 A재활원. 혼자서는 걷을 수도, 의사 표현도, 식사도 못하는 중증(뇌병변·지체·지적장애 1~2급) 장애인 32명을 24시간 돌보는 시설이다. 이 시설의 올해 운영 경비는 8억2000여만원. 이 가운데 국비가 5억여원이고 시비가 2억8000여만원, 입소자 부담액이 4000만원 정도다. 장애인 한 명당 27만4000원씩의 실비를 부담해야 하지만 19명은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여서 면제된다.

그런데 재활원의 운영이 내년부터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의 위임을 받아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는 67개 사회복지사업의 경비를 지원하는 분권교부세가 내년 1월 보통교부세로 통합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한시적으로 국가사업과 분권교부세를 자치 단체에 넘겼다. 분권교부세는 용도를 정해져 있는 반면 보통교부세는 용도 구분이 없다. A재활원의 경우 시설 운영비의 61%를 차지하는 국비 지원이 위험에 처해 있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임성만 회장은 “꼬리표(돈 쓸 용도)를 붙여놔도 그대로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데 꼬리표마저 떼 버리면 생색 안 나는 사회복지시설을 어떻게 대할지 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복지 분야의 분권교부세는 지자체 예산의 2%인 8793억원. 임 회장은 “이 중 4300억원을 차지하는 노인요양원·장애인재활원·정신요양시설 등 3대 입소자 시설 예산이 직접적으로 타격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역 편중 심해=충남의 한 지자체 사회복지담당자는 “시설을 지역 주민뿐 아니라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혐오시설이란 인식 때문에 특정 지역에만 몰려 있다. 생색은 못 내면서 부담만 버거운 시설을 어느 지자체가 달가워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59개 정신요양시설 가운데 37%인 22개가 충남(11)·경기도(6)·경북(5)에 몰려 있다. 강원도에는 하나도 없다. 충남에 있는 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 1846명 가운데 930명이 타 지역 주민이다. 장애인 생활시설의 경우도 대전·전북 지역 입소자 1666명 중 시설이 있는 지역 출신은 24%에 불과하다. 노인시설도 경남 지역 84곳 중 창원에 13곳이 있는 반면 거제·의령은 한 곳씩뿐이다.

◆자치단체, 지원에 인색=광주시 금고에는 국비 10억여원이 낮잠을 자고 있다. 장애인 시설의 낡은 장비를 보강하기 위한 ‘기능 보강 사업비’다. 장애인시설의 요청에 정부의 예산 조기 집행 의지가 반영돼 내려간 예산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송인수 사무관은 “국비를 지출하려면 같은 액수만큼 지방비를 내놔야 하는데 지자체들이 꺼리고 있다”며 “지자체가 국비를 안 쓰겠다고 버티는 곳이 사회복지 분야 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충북의 B시 등은 시의회가 시비 부담을 우려해 노인시설 설치 반대 결의를 했고, 전북의 두 지자체는 양로원을 완공하고도 개원을 연기했다. 정부는 2007년 장애인시설 70개를 확충할 계획이었으나 지자체에서는 19개만 신청했다.

서울대 구인회(사회복지학) 교수는 “3대 생활시설은 입소자 대부분이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인 만큼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존권적 기본권의 시각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며 “지방이양사업으로 둘 게 아니라 2005년 이전처럼 국가가 운영 경비를 책임지는 국고보조금사업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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