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노사협상 스케치]막판 줄다리기 밤새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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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9개 은행이 동시 참가하는 사상 초유의 은행 파업 예정일 (29일) 을 앞둔 28일 밤 금융노련 지도부가 마련된 명동성당 일대에는 서울시내 각 지점의 은행원 2만여명이 집결,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정부와 은행측 노사가 숨가쁜 막바지 협상을 벌였다.

이에 앞서 이날 낮 각 은행에서는 파업에 대비해 현금을 미리 준비하려는 고객들의 인출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 협상 진통 = 막바지 협상은 은행연합회 대회의실에서 9개 은행 노사 대표와 금융노련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11시가 지나서야 재개됐다.

협상은 당초 오후 7시부터 재개될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제일.조흥.상업.한일.평화.보람.서울은행 등 7개 은행 본점을 봉쇄, 출입을 통제한데 대해 노조측 대표가 경찰철수를 요구하며 명동성당으로 철수해 협의가 지연됐다.

경찰은 이날 은행원들이 각 지점에서 업무를 마친 뒤 각 은행 본점으로 모여 노사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파업 돌입 또는 명동성당 농성에 들어갈 것에 대비해 사전 봉쇄조치를 취했었다.

이에 앞서 이날 오후 3시쯤 박인상 (朴仁相) 한국노총위원장과 유시열 (柳時烈) 제일은행장.이헌재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 등이 명동성당을 방문, 추원서 (秋園曙) 금융노련위원장과 9개 은행노조위원장을 상대로 1차 '천막협상' 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노사 대표들이 오후 4시쯤 부근 은행연합회 건물로 옮기는 과정에서 10여명의 퇴출은행 직원들이 李위원장에게 거칠게 항의해 험악한 분위기를 빚기도 했다.

한편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金元基) 는 "은행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에 우려하며 노사 양측의 성실한 교섭을 촉구한다" 는 내용의 권고문을 채택, 이날 노사 양측에 전달했다.

노사정위는 권고문에서 노조는 파업을 자제하고 노사간 자율적 협의를 통해 인력조정을 시행하며, 정부는 노사가 마련한 인력조정 계획을 최대한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 은행원 집결 = 이날 업무를 마친 9개 은행 노조원들은 오후 8시쯤부터 명동성당으로 몰려들기 시작, 오후 11시쯤에는 숫자가 2만명 정도로 늘어났다.

노조원들은 명동성당에서 롯데쇼핑센터에 이르는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은행별로 "고용안정 쟁취하자" "금감위 해체하라" 등의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농성을 벌여 일반 시민의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 인출 소동 = 9개 은행 점포마다 은행원들이 사복근무를 하는 가운데 현금을 찾는 직장인과 월말을 맞아 세금을 미리 결제하려는 주부 등으로 평소보다 20~30% 정도 이용객이 늘었다.

외환은행 서울 상계동지점에서는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준비한 현금이 바닥나기도 했다.

한국은행은 파업 예정인 9개 은행에 대규모 현금 인출사태가 일어날 것에 대비, 이날 새벽부터 현금을 평소보다 50% 이상 많이 준비해 놓는 등 대책마련에 진땀을 뺐다.

사회부.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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