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독자여론조사에서 "당신이 가장 즐겨 농담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결과는 헬무트 콜 총리가 45%로 압도적 1위였다.
콜 총리는 동방정책을 창안한 비전의 정치가 빌리 브란트, 날카로운 분석력의 소유자 헬무트 슈미트 등 전임총리들에 비해 '무미건조하고 색깔없는 정치가' 라고 슈피겔은 혹평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콜 총리가 전후 (戰後) 서독의 초대총리로서 '라인강의 기적' 을 이룩한 콘라트 아데나워의 14년 총리재임 기록을 깼을 때 독일 언론은 콜 총리를 위대한 인물로 치켜올렸다.
콜 총리는 금세기안에 가능하리라고 누구도 예상 못한 독일통일을 달성했고, 유럽통합에 앞장선 '영원한 독일총리' 라고 찬양했다.
같은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처럼 다른 것이 흥미롭다.
콜총리를 대수롭지 않은 정치가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그 이유로 우선 꼽는 것이 콜 총리의 반 (反) 지성적 스타일이다.
소문난 눌변 (訥辯)에다 외국어도 거의 못한다.
특히 키 1백93㎝, 체중 1백40㎏의 거구 (巨軀) 는 미련하다는 인상을 준다.
콜 총리의 우둔함과 촌스러움에 관한 농담은 이미 여러 권 책으로 나와 있다.
또 체구에 걸맞게 먹고 마시는 일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실제의 콜 총리는 결코 우둔한 사람이 아니다.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역사.정치.법학을 전공해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정치에 입문한 후로 줄곧 탄탄대로를 걸었다.
29세 라인란트 팔츠 주 (州) 의회의원, 32세 주의회 기민당 원내총무, 39세 주총리, 42세 기민당수, 52세 독일연방공화국 총리 등 주요 경력을 '최연소' 로 채워 왔다.
현실주의자인 콜 총리는 행정능력이 뛰어나다.
목표를 세우면 치밀하게 실행계획을 세운 후 과감하게 추진한다.
기민성과 조정능력도 함께 갖췄다.
지난 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소련 최고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상대로 치열한 외교협상을 벌여 다음해 10월3일 마침내 독일통일의 대업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총선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서 콜 총리는 두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19년 재임 기록을 깨는 것, 또 하나는 21세기 통합유럽시대의 독일총리다.
콜 총리가 대망을 이룰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