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머나먼 '축구 르네상스'

중앙일보

입력 1998.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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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에 '축구의 시대' 는 왔는가.

19일 대전에서 벌어진 대전과 울산 현대의 경기를 보았다면 쉽게 해답이 나온다.

연장후반 8분 대전의 수비수 김대수와 현대의 공격수 유상철이 공을 다투던 중 유상철이 얼굴을 맞았다.

'선배' 유상철은 격분해 김대수의 뺨을 때렸고 현대의 노장 김현석도 달려와 넘어져 있던 김대수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유상철과 함께 레드카드를 받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기까지 김대수는 '대선배' 김현석에게 세번이나 얻어맞아야 했다.

총 48개의 반칙 (현대 28개.대전 20개) 이 저질러진 이날 경기에서 심판은 보복행위를 한 유상철과 고의성 없는 몸싸움을 벌인 김대수를 퇴장시켰지만 김현석의 세차례에 걸친 폭행엔 휘슬을 불지 않았다.

이날 경기는 승부에만 집착하는 현대팀과 인격은 떨어져도 선배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축구스타' , 무능하고 원칙없는 심판이 만들어낸 이전투구 (泥田鬪狗) 판이었다.

KBS 위성TV의 중계, 지상파 방송의 하이라이트를 지켜본 수많은 시청자들, 경기장을 찾은 1만여명의 대전관중을 멋지게 우롱한 한국 '태권' 축구의 전통고수였으며 2백여만 관중과 함께 '축구 르네상스' 를 맞는다는 98년 한국프로축구의 현주소다.

심판의 명백한 오류를 '좋은 게 좋은 것' 이라고 지나쳐오던 프로축구연맹의 행정이 자초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월드컵 이후 열기가 고조된 한국축구는 최근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거친 몸싸움과 대인마크에 신세대 스타들은 침묵하고 있고 골은 터지지 않는다.

잦은 파울로 경기가 자주 중단돼 지루한 짜증이 반복되며 관중은 눈에 띄게 줄었다.

요즘의 축구신드롬이 세련된 '축구문화' 로 정착되지 않는 한 '축구의 시대' 가 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 (緣木求魚) 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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