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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출구전략 논란 접고 실물경제 내실 다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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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다시금 “당분간 출구전략을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그제 대한상의 주최 제주포럼 초청 강연에서 “경기 회복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확장적 정책기조를 너무 일찍 중단할 경우 경기가 다시 침체될 수 있다”면서 “당분간 재정과 금융의 적극적인 역할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윤 장관의 이 같은 경기 판단과 거시경제정책의 기조에 대해 인식을 같이한다.

문제는 지난 5월부터 제기된 과잉 유동성 논란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주가가 호조를 보이고 부동산값이 들썩이면서 시중에 풀린 돈을 일부 거둬들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1일 발표한 ‘경제환경 변화와 정책방향’ 보고서다. KDI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경기 회복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금융위기 이후 취해진 각종 경기부양책을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KDI의 이 같은 우려와 정책 권고에도 일면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출구전략의 ‘마련’과 ‘도입’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KDI의 지적대로 장래의 인플레를 막기 위해 대비책을 미리 마련하는 것은 정부와 통화당국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대책을 언제 시행할지는 경기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 고도의 기술적인 판단이 필요한 일이다. 정부는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고, 우리도 그 판단에 동의한다.

지금은 출구전략을 두고 논란을 벌일 게 아니라 실물경기의 회복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거시정책에 대한 무익한 논란을 잠시 접어두고, 돈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흐르고 기업이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세심한 미시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만 정부와 한국은행이 경기 판단과 통화정책에 관해 일관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할 수 있도록 긴밀하게 조율하는 것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