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액수만 키운 과외 단속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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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고액 음악과외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지적 (본지 9월 12일자 1, 5면 보도) 이후 중앙일보 기획취재팀에는 1백여통의 학부모.학생들의 제보 및 격려전화가 잇따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한 학부모는 "한 달에 2백만원씩 들어가는 과외비 때문에 우울증에 빠졌다" 며 "딸에게 음악을 시킨 것을 요즘처럼 후회한 적이 없다" 고 답답한 심정을 하소연했다.

대기업 임원이던 남편이 최근 실직했다는 40대 주부는 "1시간에 50만원이 넘는 과외비를 감당할 수 없어 교수님께 사정을 얘기했더니 '여유가 없으면 당장 그만두라' 며 면박까지 당했다" 고 분통을 터뜨렸다.

예고생 학부모라는 어느 주부는 "지망학교 교수 전원에게 1회에 1백만원 가량씩 지급하는 속칭 '뺑뺑이 과외' 를 몇 차례 받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한다" 고 전해왔다.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족집게 고액과외에 대한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 중이지만 다른 한켠에선 음대 교수들이 버젓이 초고액 과외를 하는 등 정부의 '과외근절 의지' 가 현장에선 실종된 상태였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최근 귀국했다는 한 음대 강사는 "교수님들이 실기과외로 수천만원대의 돈을 챙기는 풍토에 환멸을 느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 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실기과외를 양성화해 기준 이상의 사례비를 받은 교수들은 현직에서 물러나도록 하고 돈을 건넨 학부모는 세무조사를 벌이는 등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대안도 제시했다.

레슨이 필수적인 음악의 특성상 실기과외가 대학입학을 위한 편법으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현행법은 현실을 도외시한 채 여전히 이를 금지하고 있어 위험수당까지 덧붙여진 과외교습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명문대에 진학시키기 위해 재능도 마땅찮은 자녀에게 예능 과외를 강요하는 일부 학부모의 자세와 사실상 불법 고액과외를 방조하는 현행 제도에 대한 꼼꼼한 점검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정제원 기자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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