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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문화 종합연구센터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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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리가 사는 한반도의 북방은 지금부터 1만년도 넘는 아득한 마지막 빙하기 이래 인류의 조상이 살던 곳이다. 백두산을 비롯해 만주 벌판, 싱안링(興安嶺)산맥, 아무르강, 연해주, 캄차카반도, 네이멍구(內蒙古), 와이멍구(外蒙古), 바이칼호, 사얀산맥, 알타이산맥, 우랄산맥, 톈산(天山)산맥,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장대한 북방의 파노라마에는 장구한 세월 우리의 조상과 피를 나눴던 사촌들이자 이웃이요, 한때 역사의 여울목에서 경쟁자 또는 적들이었던 황인종 몽골리안들이 살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인 20세기 미.소 냉전체제하에서 대부분의 북방 몽골리안들은 독립을 잃고 중국 또는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다. 소위 몽골리안 루트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한국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으므로 당연히 북방으로의 교통이 차단돼 오다가 20세기 말 1990년대에야 비로소 왕래가 시작된 터라 아직도 북방의 모든 것에 생소하다.

하지만 북방은 과거 수천년간 우리의 삶과 직결된 곳이었으며 우리의 얼과 문화가 태동한 태반이요, 정신적 고향이었다. 지금도 우리 민족공동체의 염원인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면 바로 코앞에 펼쳐질 삶의 앞마당이요, 경제적 이해득실의 터전이 될 곳이다.

북방에 대한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이러한데도 바로 눈앞에 닥칠 미래의 북방에 대한 우리의 현실적 방책은 도무지 꿈속을 헤매는 듯 아리송하고 모호하다. 시대는 우리가 꿈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벌써 북방의 바람 그 뜨거운 열기가 감지되고 있다. 북방 하면 시베리아이고 이는 곧 매섭고 차가운 눈과 얼음의 냉동 이미지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빈곤한 우리의 상상력을 비웃듯이 북방은 21세기 문명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갈되고 있는 수자원 하나로만 보아도 북방은 인류의 마지막 보고다. 석유나 천연가스, 각종 광물 등 지하자원도 마찬가지로 풍부하며 무엇보다 땅은 넓고 인구는 적으며 자본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우리에게 북방이 새로운 삶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통일한국의 미래는 전적으로 북방개척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중국의 고구려 역사 침공이 개시돼 '고구려연구재단'이 발족했지만 이 또한 우리의 북방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고구려는 한반도와 만주 동북삼성만의 나라가 아니라 당시 아시아의 대제국 투르크(돌궐)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북방제국들의 역사상 크나큰 중심국가였다. 수천년 명멸했던 북방 제민족의 근원을 밝히는 민족사 한 권 번역하거나 저술해낼 안목도 없는 책상물림 학자들이 주축이 된 고구려연구재단이 과연 무엇을 연구해낼 것인지 '그들'만 모를 뿐 많은 사람이 한심해하고 있다. 북방문화에 대한 실체적 경험과 연구실적이 부족한 온실 속 학자들의 밥그릇을 위해 국민의 혈세가 또다시 낭비될까 걱정되는 것이다.

우리는 북방지역의 경제적 진출을 위해 북방의 모든 것에 대한 총체적 연구가 필요하다. 국가예산으로 '북방문화연구재단' 같은 센터를 운영해야 하고 그 연구결과들을 '북방총서'로 간행하여 전국의 도서관에서, 또 온라인으로 많은 사람이 열람토록 정보를 적극 개방해야 한다. 지금 당장 가까운 도서관에 가보라. 구미(歐美)에 대한 책은 넘쳐나도 북방 관련서는 너무도 볼거리가 없다. 또한 북방의 모든 지역, 시베리아, 몽골, 중앙아시아 등의 여러 나라에 유학생을 다수 선발해 파견하며 국비로 지원하여 북방전문가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2001년부터 한민족의 뿌리를 북방에서 모색하며 북방답사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바이칼포럼'은 올 8월 초 두번째로 바이칼호와 야쿠치아 지역을 답사한다. 한반도의 12배나 되는 시베리아의 가장 큰 자치주 야쿠치아 공화국에서는 ' 한국인과 야쿠트인의 기원'이란 주제로 러시아 학자 40여명과 유전학.고고인류학.지질학.샤머니즘 종교학.언어학 등 5개 분과에 걸쳐 최초로 다학제적 미팅을 가질 예정이다.

우리가 이러한 문화적 접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무엇보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와 북방 시베리아의 원주민 제종족이 그 인종적.언어적.종교적.생태문화적 뿌리에 있어 상당한 근사치, 문화적 정체성의 다양한 공통분모들을 지니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확인하고 그것들을 미래의 경제적 교류 확대 내지 심화작업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밝혀주는 활로가 될 것이며 현재 북방정책의 핵심 거점으로 삼아야 할 사안이다.

국내의 현실이 어지러운 가운데 정작 새벽은 북방에서 밝아오고 있다.

정재승 한국바이칼포럼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