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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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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악극의 거장 바그너는 ‘구걸의 달인’이기도 했다. 걸핏하면 지인들에게 손을 벌리는 편지를 보냈다. “부자가 됐단 소식 들었네. 나를 짓누르는 궁핍에서 벗어나도록 1만 프랑 좀 빌려주게.”(폰 호른슈타인 남작에게) 동정심을 자극하려 애꿎은 아내를 파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동냥인들 못하겠나. 아내가 행복해진다면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을 걸세.”(동료 음악가 리스트에게)

그의 돈 타령은 가난 탓이 아니라 실은 호사스러운 습성 때문이었다.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쓰는 내내 소음과 햇빛을 막는 최고급 커튼, 발목까지 빠지는 푹신한 카펫, 솜을 두둑이 넣은 비단 바지 등을 사느라 돈을 물 쓰듯 써댔다. “밀짚 위에서 자고 싸구려 술을 들이켜며 ‘예술’을 할 순 없지 않느냐”는 게 그의 신조였다.(폴 존슨, 『창조자들』)

바그너처럼 사치를 부리진 않더라도 상상력엔 자양분이 필요한 법이다. 유명 예술가 뒤에 대개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건 그래서다. 올해 서거 200주년을 맞은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평생 부유한 헝가리 귀족 에스테르하지 가문으로부터 물심양면 도움을 받았다. 그 덕에 교향곡을 완성하는 족족 일류 연주자들을 동원해 맘껏 리허설을 하는 특혜를 누렸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1765년 물주의 호된 질책을 받은 뒤 10여 년간 그는 바리톤(현악기의 일종) 삼중주곡을 126개나 써야 했다. 지금은 잊혀진 그 악기를 물주가 유독 좋아해서였다.

이처럼 후원자가 창작의 자유까지 침범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적잖은 예술가들이 차라리 돈 가뭄에 시달리는 쪽을 택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대형 건물과 자연경관을 천으로 씌우는 설치 작품으로 이름난 부부 작가 크리스토-잔 클로드가 좋은 예다. 드로잉·모형을 팔아 작품 제작비를 대기가 늘 버겁지만 ‘후원 절대 사절’의 원칙을 고집한다. “돈을 거저 주는 사람은 산타클로스밖에 없기 때문”이라나.

우리 정치인과 법조인들도 그런 길을 갈 순 없는 걸까. 박연차 리스트가 세상을 한참 시끄럽게 하더니 검찰총장 후보자마저 ‘스폰서(후원자) 의혹’으로 물러나는 걸 보는 국민은 기가 막힌다. 분에 넘치는 호사에 대가가 따르지 않을 리 없다. 혹 나쁜 관행이 여전하다면 이참에 뿌리 뽑을 일이다. 후원이 끊긴다고 세비며 월급 또박또박 받는 의원과 검사들이 예술가만큼 춥고 배고프기야 할까.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