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의 빗나간 계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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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의 위협적이고 무모한 행동이 거듭되고 있다.

잠수정 침투를 통한 군사적 도발이 바로 엊그제 같은 상황에서 지난달 31일 사정거리 1천3백㎞에 이르는 탄도미사일의 발사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우리를 포함해 전체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질서를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이 어떠한 구실을 붙여 미사일 발사실험을 정당화하려 들던 우선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을 거스르고 있다는 점에서 규탄받아 마땅한 행위다.

아울러 북한의 미사일 실험이 우리에게 당장 안보 차원에서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설사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이 남한을 직접 겨냥하는 단거리 미사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전략적으로 대남 (對南) 군사도발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번에 시험 발사한 미사일은 유사시 한반도에 지원 출동할 수 있는 일본 등 태평양지역 미군기지와 함대를 사정거리 안에 두고 위협할 수 있다.

이들 지원기지가 위협받게 될 경우 우리 안보도 그만큼 불안정해지게 마련이다.

북한이 미사일 실험에 나서며 군사 차원에서 노린 효과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설왕설래되고 있는 북한 미사일 카드의 의미보다 우리에게는 더욱 절실하게 평화로운 생존과 관련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을 미국과의 핵협상 때처럼 정치.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속셈을 이미 드러냈다.

지난 6월 중앙통신을 통해 미사일 수출이 외화획득을 위한 것이라고 시인하며 미국이 이를 막으려면 빨리 경제제재를 풀고 수출중지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정이 잡혀 있는 미국과의 고위급회담과 때를 맞춰 대북 (對北) 경제제재 완화.중유공급 완료.경수로건설 보장.식량지원 확대 등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받아내기 위한 행동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김정일 (金正日) 총비서의 국가주석 취임을 앞둔 업적 과시일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위협으로 미국의 양보를 얻겠다고 북한이 판단했다면 크게 빗나간 생각이다.

추가 양보를 받아내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은 물론 남한과 관련국가를 자극, 경수로건설에 대한 명분을 약화시켜 지원을 더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예정됐던 경수로 사업비 분담결의안 서명을 미룬데서 그런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이미 미국 의회 내에서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정책수정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또 일본에서도 방위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와 군사대국으로 가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모두 북한의 미사일로 촉발된 최악의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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