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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문제로 낙마 수치” … 스폰서 집단으로 비칠까 우려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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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04면

16일 오전 9시20분. 대검찰청 8층 검찰총장 집무실 옆 회의실에 대검 간부 5명이 모였다. 전국 검찰청의 수사 상황을 체크하는 ‘일일상황점검회의’다. 회의는 총장 직무 대행인 한명관(49·사시 25회) 기획조정부장이 주재했다. 대검 공안부장·형사부장·수사기획관·대변인이 참석했다. 원래 이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검찰총장이다. 대검 차장·중수부장·공안부장·기획조정부장·대변인 등 핵심 간부 6명이 참석한다.

검찰 초유의 수뇌부 실종 사태

그런데 이날은 이인규 중수부장이 사퇴한 데 이어 검찰총장 인사 청문회 당일(13일) 문성우 대검 차장이 퇴임하고 이틀 뒤 천성관 후보자에 대한 내정이 취소되면서 주요 참석자 3명이 빠진 것이다. 회의는 보통 때나 다름없이 40분간 진행됐다.

검찰이 천 전 후보자의 퇴임 이후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1948년 검찰청법 제정으로 검찰조직이 사법부에서 독립한 이래 검찰총장과 대검 차장·중수부장이 동시에 공석이 된 것은 처음이다. 검사장급 간부가 전국 검찰 상황을 보고받고 점검하는 것도 초유의 일이다. 총장 대행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법무부는 대검 간부 중에서 최고참인 김진태 형사부장을 회의에 참석하도록 했다고 한다.

대검의 상황만 이런 것이 아니다.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의 고등검찰청의 수장 자리도 모두 비어 있다. 전국에서 가장 사건이 많은 서울중앙지검장도 없는 상황이다. 서열파괴로 임채진 전 검찰총장(사시 19회)보다 세 기수 후배인 천 전 후보자(사시 22회)가 내정되면서 사시 선배·동기생이 퇴임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한 주는 나의 20여 년 검사 생활 동안 가장 기나긴 1주일이었다. 검찰총장 인사 청문회, 후보 사퇴, 내정 철회, 비공개 퇴임식에 이은 쓸쓸한 퇴장. 모든 게 처음 보는 낯선 풍경들 앞에서 당혹해할 수밖에 없었다. 젊은 검사들의 절망감을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도 걱정되고.” 천성관 전 후보자의 낙마 과정을 지켜본 대검의 한 검사장급 간부는 18일 이렇게 말했다. “국회발 집중호우에 가장(천성관 후보자)뿐 아니라 집(검찰) 전체가 떠내려 갈 판”이라는 자조 섞인 한탄도 나온다.

일선 검사들의 동요도 심각하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정권이 바뀌면 공직사회 분위기 쇄신이라는 명분으로 파격 인사를 통해 검찰권을 장악하려고 한다”며 “파격 인사를 하려면 대상자에 대한 검증부터 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남지청의 한 평검사는 “검찰총장이 재산 문제로 낙마하게 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대다수의 검사들은 이번 일로 검찰 조직이 스폰서 집단처럼 비쳐질 것을 우려했다. 자괴감이 든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한 검사는 “어디 가서 검사라고 얘기할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차기 검찰총장이 임명되기 전까지 한 달 이상 이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달 안으로 새 총장 후보자가 내정된다 해도 인사청문회를 거쳐 정식으로 집무를 시작하려면 그 정도는 걸린다.

당장 검찰 정기 인사가 지연되면서 현장에서의 업무 차질도 빚어지고 있다. 주가 조작·횡령 등의 혐의로 법조인·기업인 등을 고소했다는 방희선 변호사는 “검찰 인사가 늦어지면서 당사자 조사와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사들이 동요하는 것을 걱정해 대검은 일선 검사들에게 총장직무대행 명의로 당부사항을 시달했다.

“조직에 부끄러운 일이 있다 해도 의기소침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하라”는 내용이다. 외부인과 어울리는 것을 자제하고 부적절한 언행을 삼가라는 취지다.

한명관 기조부장은 총장 대행 직무 수행과 관련,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으니까 무겁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검찰 조직은 시스템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살다 보면 어려운 일도 겪지만 결국은 극복해 내는 것이 인간의 역사이고 검찰의 역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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