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비판적이던 MB 최근엔 ‘열린 자세’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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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헌절인 17일 정치권에선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국회의 수장인 김형오 국회의장이 맨 앞에 섰다.

사실 개헌은 ‘묵은 과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1987년 체제인 현행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다. 그런데도 성사되지 못한 건 개헌의 키를 쥐고 있는 누군가가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연임제 개헌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차기를 노리는 대권주자들이 반대, 무산시켰던 게 그 예다. 이번 개헌 논의는 결실을 거둘까. 키를 쥔 다섯 사람들의 입장은 이렇다.

공개적으로 가장 활발한 사람은 김형오 의장이다. 그는 이날도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시대적 요구이자 역사적 소명”이라고 말했다. 그러곤 국회 중심의 논의 구조를 제안했다. 국회 내에 개헌특위를 두자는 것이다. 올 정기국회 때부터 논의를 시작,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새로운 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까지 마쳐야 한다는 시간표도 제시했다. 그는 “이 시기를 놓치면 몇 년 내에 개헌의 적기를 다시 찾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2011년부터는 2012년의 총선과 대선 영향권 내에 들어 이해 조정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게 그의 판단이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적극적이다. 그 역시 이날 “땜질식 개헌이 아니라 새로운 틀을 창조하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5~7개의 광역단위로 나누어 각 광역단위의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로 구성되는 연방제 국가로 국가구조를 대개조해야 한다”는 소신도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개헌과 관련해선 공개적으로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회 논의를)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라고만 전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개헌에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경제위기 극복이 우선돼야 한다는 시각에서였다. 하지만 근래엔 달라졌다는 게 중평이다. 한 핵심 참모는 “열린 자세”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 스스로 ‘근원적 처방’을 언급한 적도 있다. 다만 이 대통령의 의중이 어디까지 의미하느냐를 두곤 주변의 관측이 엇갈린다. “찬성하지만 오해를 살까 봐 지켜보는 것”이란 견해에서부터 “반긴다는 것도 꺼린다는 것도 소문과 다르다” “개헌은 관심사가 아니다”란 얘기까지 나온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4년 중임제 개헌론자다. 개헌 시기와 관련해선 2007년 연임제 개헌 논의 때 “개헌은 다음 정부에서 해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다. 당시 ‘다음 정부’라면 현 정부를 가리킨다. 그는 이달 초 “(4년 중임제란) 입장은 이미 밝혔다. 변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개헌 시기에 대해선 특정하지 않았다. 그와 가까운 인사들은 “현재 개헌 논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원래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근래 경계감을 자주 피력하고 있다. 이날도 야3당 대표들과 함께 김형오 의장의 개헌 제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지금은 국회의장이 개헌 논의를 본격화할 시기라기보다는 국회 정상화와 지도력을 회복하는 게 먼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국면 전환용 개헌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일도 있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개헌 논의란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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