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부세력 영향력에 사법부가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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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현직 법원장이 대법관 임명 제청 절차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외부 세력이 법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대법원에 사의를 밝힌 강병섭 서울중앙지법원장이 "개혁성과 진보를 내세운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의견이 법원에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은 사법부의 심각한 위기"라고 지적한 것이다.

법원이 외부의 특정 세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법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대법관 인선도 마찬가지다. 인선 과정에선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자문기구를 둬 외부 의견을 청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개혁성''진보적 성향' 등 특정 성향의 인물로 인선을 제한하는 결과가 된다면 위험하다.

'법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대법관 인선에서 특정이념 성향이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법관들은 묵묵히 일하기보다는 적당한 때 변호사로 개업해 경제적 안정을 누리면서 시민단체 등과 보조를 맞춰 진보적이란 평판을 얻은 뒤 법원으로 복귀하려 할 것이다. 법원에 남아 있다 해도 시류에 영합하는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강 법원장의 지적대로 진보 혹은 보수적 소신이 재판에 영향을 미쳐 승소할 사람이 패소하고 징역 살 사람이 풀려난다면 그 사법부를 누가 믿겠는가.

우리는 강 법원장의 지적이 사법부 개혁 방식이나 목표를 둘러싼 법원 안팎의 우려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대법원 구성 등과 관련해 벌써 사법부 수뇌부가 특정 성향의 인물들로 채워질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문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가운데 13명이 교체되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사법 개혁의 목표가 사법부 수뇌부를 코드에 맞는 인사로 교체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 사법부는 이념과 권력, 심지어 여론까지도 뛰어넘어 독자적인 영역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