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오르타 박사의 봉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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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6세기말 중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가톨릭선교사들에게 몹시 난처한 문제의 하나는 공자.맹자 등 중국 성현들이 천당에 갔을까, 지옥에 갔을까 하는 것이었다.

교회의 기능을 구원의 절대적 조건으로 여기던 당시 신학으로는 이들이 지옥에 갔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인들에게 파천황 (破天荒) 의 이단 (異端) 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고, 선교사업에 결정적 장애가 됐다.

서로마제국멸망 후 1천년간 폐쇄상태에 있던 유럽 기독교세계는 이질적 문명과의 융화를 위한 자세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16세기 대항해시대를 통해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다른 고등문명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유럽 신학계에서도 '세계화' 를 향한 변신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연옥 (Inferno)' 을 천당과 지옥 사이의 완충지대로 설정한 것도, '충족은총 (Gratia Sufficiens)' 으로 구원의 길을 넓히는 학설이 나온 것도 모두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일이다.

'아시아적 가치 (Asiatic Value)' 가 적잖은 아시아인의 공감을 모으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인권에는 보편적 기준이 있는 것일까. 인권문제를 빌미로 미국이 펼치는 강압외교는 옛 선교사들의 협박선교와 뭐가 다른가.

그리고 자기네와 같은 문명을 가져야만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고 '백인의 짐' (White Man' s Burden) 을 내세우던 식민주의자들과 어떻게 다른가.

제주에서어제 막을 내린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회의는 원래 섬지역의 정치적 탄압을 조명하는 운동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대만과 오키나와의 참가자들이 많았다.

동티모르의 평화적 독립운동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호세 라모스 오르타 박사가 여기서 초청강연 도중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아시아 몇몇 나라에서 인권탄압의 허울로 '아시아적 가치' 가 악용되는 것을 규탄하다가 사례의 하나로 중국을 들먹이자 "이의 있소!" 고함과 함께 대만 참가인단이 집단퇴장한 것이다.

보편성으로부터의 일탈이 어떤 독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우리는 '한국적 민주주의' 에서 절실한 경험을 가졌다.

그래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아시아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는데 국내에서는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그러나 보편적 기준이 강자의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악용돼 온 사례도 역사 속에는 얼마든지 있다.

대만의 인권운동가들이 중국의 아시아적 가치를 옹호하는 장면에서도 배울만한 교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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