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용조정, 어떡하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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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대자동차 파업사태가 어렵사리 타결됐다.

공권력 개입에 따른 충돌사태 없이 대화로 해결된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그러나 우려한대로 정리해고는 '상징적 수준' 에 그쳤다.

정리해고가 법제화됐다 해서 마구 해고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결과적으로 2백77명이 해고됐고 해고에서 제외된 1천2백61명은 1년6개월간 무급휴직됐다.

정리해고된 숫자는 많지 않지만 '사업장 규모에서 국내최대, 성향면에서 최강성 (最强性) 노조로부터 정리해고를 공식 인정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큰 성과' 라고 정부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해고 규모보다 그 과정이고, 앞으로 구조조정에 미칠 파장이다.

국민합의로 법제화된 정리해고가 노조의 불법적인 행동으로 저지당했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조의 불법행위에 적극 대처하지 않은 채 법과 원칙을 흔드는 합의를 강요하는 등 '노동계 달래기' 에 급급해 온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타율적 수습 끝에 정리해고가 어렵사리 물꼬를 텄다고는 하지만 이로써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확보됐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타결의 후유증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차 사태를 주시해 온 여타 기업들은 당분간 정리해고는 어렵겠다는 판단 아래 인력구조조정을 머뭇거리고 있다.

정부당국의 구조조정의지가 의심을 받고, 대외신뢰 실추로 외화차입이 사실상 중단상태에 빠졌다는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기업도 못 하는데 외국기업들이 무슨 수로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겠느냐고 외국투자가들은 등을 돌린다.

'대타협' 은 커녕 '노사정 모두의 패배' 나 다름없다.

다음달부터 본격화될 정부와 공공부문.제2금융권, 그리고 주요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현대차사태 해결이 미칠 악영향은 불을 보듯 훤하다.

사업주나 공공기관의 장 (長) 이 경영상 필요에 따라 정리해고를 단행하려 해도 노조의 반대로 해고계획이 무산되거나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될 경우 구조조정은 지연된다.

실제로 현대차사태는 '강하게 반발하면 정리해고를 막을 수 있다' 는 노조의 강경투쟁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구조조정의 핵심중 하나가 고용조정이다.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제2, 제3의 현대차사태가 생겨날 경우 정부와 정치권은 그때마다 중재에 나서 '현대차 해결방식' 을 고집할 것인가.

정리해고는 노사협상의 대상도, 정부나 정치권이 중재에 나설 일도 아니다.

구조조정이 지상과제라면 설령 일시적으로 인기를 잃고 비난을 받더라도 법과 원칙대로 행동하는 것이 정부의 도리다.

인기와 '타결' 만 의식하다 구조조정을 그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소탐대실 (小貪大失) 이 없다.

앞으로 고용조정은 어떻게 하라는 얘기며,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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