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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러시아 경제]환전소·생필품가게 장사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루블화 평가절하와 모라토리엄 (지불유예) 이 발표된 지 만 하루가 지난 18일 오전 모스크바 중심가중 하나인 다라고밀로프스카야 거리. 생필품 상점마다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물가 폭등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사재기 행렬이다.

'잠을 깨보니 전혀 다른 나라였다' '루블 하락의 허가증' 등 굵은 제목의 이날자 조간신문을 든 시민들은 언제 밀어닥칠지 모를 물가폭등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수심이 가득찬 모습들이었다.

"며칠 후면 물가가 치솟는다. 빨리 사두지 않으면 물건들이 바닥이 날 거야" 라며 긴 줄에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평소 오전 10시 문을 여는 키오스크 상점의 주인 막심 (33) 은 '노바야 체나' (새 가격) 라는 조그만 글씨 밑에 품목에 따라 평균 50코페이카에서 5루블 정도씩 오른 새 가격을 열심히 써넣고 있었다.

"루블화의 가치가 평균 30% 이상 떨어져 우리도 가격에 반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어요. "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6.5루블씩 받던 수입품 하이네켄 맥주를 8루블로 올려 받고 있다.

같은 시간대 모스크바 키예프역. 우크라이나에서 밤새 달려 도착한 기차로 모스크바에 온 보따리 상인 이리나 (43) 는 환전소를 전전하다 겨우 한 곳에서 달러를 바꿨으나 하룻밤 사이 껑충 뛰어버린 달러값에 고개를 흔들었다.

"키예프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1달러에 6루블 30코페이카였는데 오늘은 9루블을 주고도 달러를 구하기가 어려워요. " 이번 사태로 더욱 어렵게 된 사람들은 연금생활자와 체불노동자. 이들의 분노는 거의 폭발 직전이다.

연금생활자 입장에선 연금의 가치가 대폭 줄어든 반면 대부분이 수입품인 생필품의 가격은 올라 이중.삼중의 생활고를 겪게 됐다. 이들은 정부의 정책실패와 거짓말.무능을 비판하고 있다.

긴 줄 속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던 이리나 (72) 할머니는 "오는 22일 투루도바야 로시야 (노동러시아).전러시아독립노조연맹 등이 주최하는 대규모 반정부시위에 적극 참여해 옐친의 사임을 요구하겠다" 고 각오를 다졌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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