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영화사]9.'마카로니 웨스턴'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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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64년 8월 중순, 이탈리아 피렌체지방의 어느 허름한 영화관. 조잡한 글씨체로 '황야의 무법자' (For a fistful of dollars) 란 간판만 달랑 걸려있다.

삐걱거리는 목조의자에 앉은 관객은 고작 수십명. 더구나 그날은 목요일이다.

그런데 토.일요일을 거치며 관객 수가 점점 불더니 마침내 월요일엔 평일인데도 객석이 가득찼다.

기적 같은 반응이었다.

이 후 반년이 지났을 때 '황야의 무법자' 는 유럽의 대부분 국가에서 흥행 1위의 자리를 차고 앉았다.

세르지오 레오네 (1929 - 89) 감독이 주도한 '스파게티 (마카로니) 웨스턴' 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더불어 미국에서 건너온 무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석양의 무법자' (65년.For a few dollars more) '속 석양의 무법자' (66년.The good, the bad, the ugly) 등 레오네 감독의 '달러 3부작' 을 통해 부동의 스타 자리를 꿰찼다.

모래바람이 풀풀 이는 서부의 사막, 엔니오 모리코네의 강렬한 기타음과 휘파람 소리가 고즈넉하게 퍼지는 가운데 판초를 길게 늘어뜨리고 시가를 입에 문 채 냉소적인 표정으로 걸어오는 사나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아이콘이 되다시피한 이 캐릭터를 통해 레오네 감독은 고전 서부극에 깔린 낭만주의나 청교도 정신은 허구라며 '서부의 신화' 에 도전했다.

그는 미국의 서부시대를 '한 줌의 달러' 때문에 서로 총을 겨눈 부정직과 치사함이 지배했던 시공간으로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이후 스파게티 웨스턴은 이탈리아에서만 10년새 약4백편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사람들은 나를 스파게티 웨스턴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내 새끼들 중에는 유전적으로 이상이 있는 자식들 밖에 없다.

그들 중에는 누구도 내 적자 (嫡子)가 아니다. "

분위기만 어설프게 빌려온 아류작들을 겨냥해 레오네 감독이 내뱉은 항변이다.

그러나 신비적인 기운마저 도는 그의 영화 스타일과 풍자정신은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69년) 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 (92년) 등을 통해 되살아났다.

특히 이스트우드의 작품은 존 포드의 휴머니즘을 견지하면서도 레오네의 비판적 태도를 잃지 않은 걸작이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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