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8월 그리고 50년]다시가본 그날 17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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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들어선 지 사흘. 벅참과 들뜸은 이제 바쁨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나라의 얼개는 짜였지만 그 토대와 실속을 다지는 일은 이제부터니까. 주요 신문들도 '정권이양 사무 진척 - 17일부터 업무 인수인계 착수' '정부 공금 물자 이양 - 한미회담 개시' 등을 머릿기사로 올렸다.

과도정부가 해체됨에 따라 어제 (16일) 한.미 양국 대표가 중앙청 200호 실에서 정권이양에 합의해 오늘부터 업무를 인수.인계한다.

'대통령 신당공작, 한민당은 개편?' 기사는 이승만의 정계개편 구상을 암시하는 내용. 그러나 출처가 불분명한 추측성 보도다.

이날도 수재의연금은 계속 답지. 그땐 돈이 없으면 옷가지나 약품도 받았다.

동아일보의 당일 접수액은 41만3천1백10원. 의류 17점.약품 2백점 등이 들어왔다.

쌀 한가마에 7천원 하던 시절이다.

"경제적으로 곤궁한 이범석 (李範奭) 총리가 남에게서 돈을 취해 5천원을 보내왔다" 는 소식은 그래서 자못 흥미롭다.

최초의 여성장관인 임영신 (任永信.상공) 은 1만원을 쾌척. '신생 대한민국 전도양양' 이라는 뉴욕 타임스 보도가 모두를 고무했고, '여류 맹인 소설가 (정확히는 '저술가' ) 헬렌 켈러 내조 (來朝) 예정' '주한 미부영사 펜디 크레슨 29일 취임' 등의 소식도. 그런 가운데 수도청 (서울시경) 은 정부수립후 첫번째로 '대통령 관저 (경무대) 주변 경적 (警笛) 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오늘은 무엇보다 반민족행위자처벌법이 국회 (제43차 본회의)에 상정돼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된 날로 의미 깊다.

국회가 과연 친일 반민족행위자 처단을 위한 법

제정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

법제정 노력을 독려라도 하듯 같은 날 애국선열봉안위원회 (李始榮) 는 이동녕 (李東寧).차이석 (車利錫) 두 선열의 유해를 사회장으로 효창원에 안장키로 결정했다.

김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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