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심훈 '만가 (輓歌)'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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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비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등은 귀화같이 껌뻑이는데

동지들은 옷을 벗어 관 위에 놓는다

평생을 헐벗던 알몸이 추울상 싶어

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

하여

단거리 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준다

- 심훈 '만가 (輓歌)' 중

1926년 혁명적 시인 심훈 (沈熏.1901~1936) 은 그 뒤의 농촌계몽시대에 앞서 훨훨 타오르던 시의 불덩어리였다.

한 동지가 감옥에서 죽어나온 그 시신을 폭우 속에서 장사 지내는 것을 처절하게 노래한다. 한국 시인들이 고금을 통해 폭우.해일과 같은 커다란 비극을 노래하기에는 너무 섬세한 것인가.

여기 드물게 비 쏟아지는 날의 엘레지가 있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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