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자동차·섬유 ‘유리’ 축산·화학은 ‘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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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이 임박함에 따라 산업별로 어떤 영향을 받을지가 관심사다. 한국과 EU는 무역 구조상 상대적으로 잘하는 분야가 뚜렷하게 나뉘는 편이다. 한국은 조선·가전제품 등에서, EU는 의약품과 정밀기계 등에서 앞서 있다. 관세가 철폐되더라도 겹치는 분야가 적어 시장 쟁탈전을 벌이기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효과가 크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내의 취약한 산업 분야는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최대 수혜=이번 FTA가 타결되면 자동차 업계는 한 단계 도약할 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EU의 자동차 수요는 1473만 대로 미국(1319만 대)을 넘어섰다. 우리 자동차 업체들은 지난해 40만8934대를 EU에 수출했다.

현재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은 한국이 8%, EU는 10%다. 배기량 1500㏄를 넘는 자동차는 3년 안에, 그 이하는 5년 뒤 관세가 사라지게 되면 그만큼 가격을 낮출 수 있어 EU 수출이 늘어날 전망이다. 더구나 1500㏄ 이하 중소형 차는 한국 제품이 세계적으로 품질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어 가격경쟁력까지 갖춘다면 EU 시장 공략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EU FTA 타결로 자동차 수출이 4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EU가 수입 트럭에 대해 22%의 관세율을 매기고 있는데 이게 철폐될 경우 국산 트럭은 새 시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1500㏄를 넘는 중대형 차량의 관세가 먼저 사라지는 점은 부담스럽다. 유럽의 중대형 차량들이 국내 고급 승용차 시장에서 영역을 넓히면 국산 자동차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전·섬유도 득이 더 많아=반도체·휴대전화는 이미 무관세로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TV 수신 기능 탑재 LCD 모니터’와 ‘동영상 송수신 3세대 휴대전화’ 같은 첨단기술형 융합 제품은 사정이 다르다. EU 측이 현재 이런 제품을 일반 가전으로 분류해 10%대의 관세를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TV용 브라운관(관세율 14%)·VCR(8~14%)·전자레인지(5%) 등의 EU 수출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섬유제품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 당장 이탈리아의 고급 패션 브랜드가 몰려드는 것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화학섬유원사 등은 4~12%의 관세가 사라지면 유럽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동유럽에서 직물을 사 오는 서유럽 의류업체들이 구매처를 한국으로 돌릴 가능성도 있다.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등 EU의 정부 조달 시장의 문도 열린다. 건설과 환경 관련 업체들이 새로운 수주처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다. KOTRA에 따르면 당장 올해만 해도 헝가리의 대규모 화력발전소와 루마니아의 고속도로 건설사업 발주가 예정돼 있다.

◆농·축산업 피해 불가피=한국의 경우 농산물에 대한 평균 실행 관세율이 41.6%로 EU에 비해 훨씬 높다. 관세가 사라지면 EU산의 가격경쟁력이 월등해진다. 특히 지난해 4억 달러가 넘게 들어와 수입 농산물 가운데 1위를 차지한 EU산 돼지고기 수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원은 “양돈농가의 피해가 불가피한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수입 분유(176%)와 치즈(36%)에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이게 사라지면 국내 낙농제품 역시 충격이 작지 않을 것이다. 수입산끼리 경쟁하는 와인의 경우 관세가 사라지면 국내 소비자가 좀 더 싼값에 즐길 수 있게 된다. 가장 민감한 품목인 쌀은 이번 협상 대상에서 빠졌다.

화학과 기계류도 당분간 고전이 불가피하다. 이미 의약과 화장품·농약 등 국내 정밀화학 제품 시장에서 EU산이 30%에 달하는데 FTA로 국내 시장에서 EU산 점유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계류 역시 우리 업체들의 경쟁력이 많이 처진다. 우리 기계·화학업체들은 경쟁력과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관세가 없어져도 유럽 시장을 뚫기가 벅찬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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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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