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세상보기]해결책은 '20대 80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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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7년말 국제통화기금 (IMF) 의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우리나라 실업자는 65만명. 그러나 여섯달후인 98년 6월 이 숫자는 1백52만명으로 불어났다.

실업률도 2.1%에서 7%로 올라가 30년 만의 최고기록을 세웠다.

지난 7월 23일 이런 좋지 않은 뉴스를 발표하는 통계청장의 얼굴은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졌다 (고 한다) . (너무 자괴하지 마시길. 실제로는 이미 2백만명을 넘어섰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음. 연말까지 얼마나 더 늘어날지 감히 예측하기 겁난다고 함. ) 며칠후 일요일인 7월 26일 오후 경제관료들과 대기업총수들이 비밀리에 모여 앞으로의 구조조정방안을 논의했다.

언론의 극성으로 모임장소가 공개되긴 했으나 진지한 토론은 7시간이 넘게 계속됐다.

이 자리에서 실업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 결국 임금삭감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조정 (정리해고의 다른 말) 을 최소화하기로 결정했다.

과연 그렇게 될까. (유럽의 지성들이 주목하는 '20대 80의 사회' 를 생각하면 역시 자괴하실 필요가 없을 겁니다.

세계경제를 유지하는 데는 현재 노동력의 20%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이 이 이론 아닙니까. ) 흔히 중산층 몰락의 이론으로 불리는 20대 80 이론은 21세기엔 직업을 가진 20%와 무직업의 80%로 사회가 재편된다는 내용이다.

그래도 아무 말썽이 없다.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을 지낸 브레진스키에 따르면 무직업의 빈곤층 80%는 티티테인먼트 (tittytainment) 로 생활하게 되니까 말이다.

이 말은 영어 속어로 엄마 젖을 뜻하는 titty와 오락을 뜻하는 entertainment의 합성어. 즉 이들은 약간의 먹거리와 오락물에 만족하며 아무 저항 없이 얌전하게 일생을 보낸다는 것이다.

티티테인먼트의 대표적 사례로는 상업주의 영상산업이 꼽힌다.

(타이타닉은 너무 슬퍼, 훌쩍. 주라기공원은 너무 재미있어, 와우. ) 20대 80의 사회는 독일 슈피겔지의 두 언론인이 '세계화의 덫' 이라는 저서를 통해 재조명한 신랄한 화두 (話頭) .이 말은 이미 1995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21세기를 조망하는 국제회의에서 등장했다.

세계적인 석학과 기업가들, 그리고 고르바초프와 대처 같은 퇴역정치인들도 참석한 이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20%의 노동력만으로도 모든 상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는데 공감했다.

따라서 모든 사회구성원이나 기업 또는 국가가 이 20% 안에 들기 위해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을 벌이는데 거기서 살아남는 방법도 간단하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다음과 같이 바꾸면 된다.

'세계화의 덫' 저자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 .

첫째 수단과 목적을 전도 (顚倒) 시킨다.

종래에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고 경쟁력 향상은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경쟁력 향상을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삶의 질을 희생시키면 된다.

둘째 주체와 객체를 뒤바꿔 놓는다.

종래에는 노동력이 창조와 진보의 주체이고 경영혁신과 생산합리화가 객체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쟁력 있는 상품 생산이 주체이고 노동력은 경영혁신의 대상물이 된다.

셋째 기업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의 우선순위를 뒤바꿔 놓는다.

종래에는 인간관계 존중과 자연 보호 등이 우선 순위였고 기업의 경쟁력 향상은 다음 순위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쟁력 있는 상품 생산을 위해 값싼 노동력을 선호하고 자연파괴를 서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모인 한국의 지도자들은 과연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20대 80을 한번 세게 밀어 볼까. 그럼으로써 세계 경제전쟁에서 빛나는 승자가 돼볼까. 그런데 이런 사회는 '병든 사회' 라는데…. 그러나 병든 사회일수록 경쟁력이 월등한 오늘의 현실을 어떡한다?)

김성호(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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