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잠깐, 복날 삼계탕 찾기 전에 닭에 관한 얘기 몇가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경기도 일산 닭농장에서 15년에 걸쳐 복원해낸 긴꼬리닭. 1m가 넘는 긴 꼬리를 날리며 우아한 자태로 앉아 있다.

다음 주 화요일(14일)이 초복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음 달 13일까지 꼬박 한 달을, 말 그대로 복더위 속에 살아야 합니다. 생각만 해도 골이 ‘띵’하군요. 바로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삼복의 보양식이죠. 물론 요즘 보양식을 두고는 말이 많습니다. ‘과잉영양시대에 웬 보양식’이냐는 거죠. 그래도 인삼 넣은 닭 한두 마리쯤은 배 속에 넣어두어야 왠지 이 무더운 여름을 견뎌낼 것 같으니 어쩌란 말입니까.

삼복 사이 1억여 마리의 닭이 우리의 여름을 위해 희생될 거랍니다. 닭에게는 ‘잔인하고도 의미 있는 계절’이죠.

그래서 삼복을 앞두고 닭 얘기를 준비했습니다. 닭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獻辭)입니다. ‘닭은 닭이지 무슨 요란이냐’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이 얘기를 끝까지 읽어보십시오. 닭은 우리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답니다. 닭은 문화에서, 예술에서, 과학에서, 생활 곳곳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북돋워주었답니다. 이걸 알게 된다면 삼계탕에 젓가락을 대기 전 잠시 숙연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삼계탕을 먹고 왜 힘을 내야 하는지도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되겠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닭과 함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관혼상제 예식 어디에도 닭이 빠진 적은 없습니다. 전통혼례 때 암탉과 수탉을 마주보게 했고, 세상을 떠날 때 타던 상여 꼭대기는 온갖 모양의 알록달록한 닭으로 장식했습니다. 그래서 닭이 들어간 민화와 공예품도 많습니다. 그뿐인가요. 우리 고유의 토종닭을 재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닙니다. 프랑스는 나라를 상징하는 새가 바로 수탉입니다. 월드컵 등 국제경기 때면 어김없이 닭 인형을 들고 응원하는 프랑스인들을 자주 볼 수 있는 이유이지요. 포르투갈에선 닭이 정의의 상징이자 행운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각종 닭 모양 캐릭터가 생활용품에서부터 액세서리까지 널리 사용됩니다.

이 정도론 다 얘기 못하겠습니다. 뒷면에서 계속해 더 해볼까 합니다. 이 여름 우리를 위해 몸 바칠 닭에게 조금이라도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게 말입니다.

예술이 된 닭
민화에서 상여 꼭두까지 행복의 상징으로

‘서울 닭 문화관’에 있는 꼭두닭들

‘꼭두닭’이란 것이 있다. 예부터 상여 위에 올려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던 닭 모양의 나뭇조각이다. 닭이 귀신을 쫓는 영물이어서 망자에 잡귀가 들러붙지 못하게 지키고, 극락으로 인도해 주는 길잡이를 삼은 것이다. 그 모양엔 죽음의 음울함이 없다. 빨강·노랑·파랑 등 원색에다 모양새는 마치 피카소의 작품처럼 단순하고 화려하다.

서울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서울 닭 문화관’에 갔을 때 본, 마치 장식품처럼 화려한 닭 공예품이 모두 꼭두닭이라고 했다. 이 꼭두닭들은 이화여대 보건학과 교수를 지낸 김초강(70) 관장이 모았다. 1980년대 학생들과 수학여행 중 묵었던 민박집에서 꼭두닭을 땔감으로 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뒤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꼭두닭을 모았단다. 이렇게 모은 꼭두닭이 모두 1000여 점. 꼭두닭을 모으다 보니 자연스레 닭과 관련된 골동품과 민화 등 다른 예술품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이렇게 사들인 닭 관련 물품도 2000여 점에 이른다.

그래서 닭과 관련된 공예품과 그림 등을 보려면 전국을 발품 팔며 다닐 게 아니라 닭 문화관에만 가도 웬만한 것은 볼 수 있다. 이곳은 로비 입구에서부터 온통 닭이 주인공인 작품들로 넘쳐난다. 붉은 닭들이 노닐고 있는 한국화, 닭이 들어간 민화로 만든 병풍, 닭과 나비를 새겨넣어 부부의 금실을 표현했다는 반닫이 장 등이 눈길을 끈다. 닭 그림이 그려진 LP판, 헝가리에서 건너온 싸움닭의 박제, 꼬리가 몸의 세 배는 됨직한 일본 긴꼬리닭 유리 장식품 등도 재미있다. 생활용품도 있다. 닭 문양이 들어간 접시와 그릇·컵 등도 다양하다.

김 관장은 닭 모양 펜턴트의 목걸이와 귀고리까지 닭으로 치장했다. 그는 “닭의 벼슬은 선비의 표상인 관을 나타내고(文), 날카로운 발톱은 무기가 됐다(武). 또 대가족을 지키는 수탉은 용맹함(勇)을 지녔고, 암탉과 병아리부터 먹이를 주는 인자함(仁)도 있었으며, 새벽을 정확하게 알리는 믿음(信)이 있는 동물”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12번지/02-763-9995/오전 10시~오후 6시(매주 월, 설·추석 연휴 휴관)/입장료 성인 3000원, 어린이 2000원.



과학이 된 닭
그 옛날 긴꼬리닭·오계 되살려 낸 사람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계.

이제는 기억에서도, 눈에서도 희미해진 ‘토종닭’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도 일산에서 닭농장을 하는 이희훈(60)씨는 토종닭 중에서도 ‘긴꼬리닭’을 복원시켰다. 붉은 벼슬과 갈색 몸통, 1m가 넘는 검은색의 긴 꼬리로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이 닭은 2000년 전 문헌에도 등장하는 우리 재래 닭의 일종이라고 한다. 이씨는 축산대학 졸업 후 기자를 하다 축산잡지사 사장을 하면서 취미삼아 자신의 집 옥상에서 조금씩 닭을 기르기 시작했다. 주로 재래 닭을 키웠는데 닭의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그중에 꼬리가 조금 긴 녀석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닭들을 10년간 순종 교배시킨 결과 꼬리가 1m나 되는 닭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DNA 분석을 거친 뒤 농촌진흥청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건의했다. 하지만 일본 긴꼬리닭과의 유사성 문제로 등재가 잠시 보류된 상태다.

흔히 오골계라 불리는 토종닭 ‘오계’를 6대째 지켜오는 이도 있다. 충남 논산 연산오계 농장의 이승숙(46) 사장. 이 사장은 지난해 “오골계는 일본 닭 품종이다. 벼슬부터 발톱, 뼈까지 검은 우리 재래 닭의 이름은 오계가 맞다”며 문화재청에 이의를 제기, 이를 인정받았다. 미혼의 이 사장은 조선 철종대부터 가보로 전해 내려온 오계 500마리를 홀로 키우느라 혼기까지 놓쳤다고 했다. 오계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지난해엔 5개 품종의 토종닭이 복원되기도 했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15년간 종자 개발사업을 벌인 결과 얻어낸 수확이다. 종자 복원은 간단치 않은 과정을 거쳤다. 1994년부터 4년간 국내 잔존 토종닭의 유전자원을 수집해 DNA 분석을 통해 계통을 확인했다. 이후 15세대에 걸쳐 순수화 품종 복원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렇게 해서 얻어낸 토종닭 5품종의 토착화에 성공하고, 이 종자를 세계농업기구(FAO)에 등록해 종자주권을 확보했다. 그런데 품종이름이 없다. 회갈색·적갈색·황갈색·흑색·백색종으로 부르고, 육질형·산란형·성장형 등으로 구분했다. 식품으로서의 닭의 생산성에만 치중해 다소 삭막하고, 낭만적인 구석이 없어 서운하다.

이젠 종자 보급에도 나섰다. 아직 널리 퍼지진 않았지만 ‘우리맛닭’으로 이제 마리 수를 늘리고 있다. 축산원 서옥석 가금과장은 “토종닭 종자들은 충남 천안의 축산원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며 “이제부터는 토종닭을 먹을 때마다 찜찜해했던 게 옛 기억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가 된 닭
포르투갈·프랑스엔 ‘닭 디자인’ 왜 많을까

닭을 들고 응원하는 프랑스 축구팬.

포르투갈에 전해오는 ‘바르셀루스의 닭’이라는 얘기가 있다. 성지 순례에 나선 한 순례자가 바르셀루스의 어느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그 집 하녀는 그를 보고 연정을 품었지만 그는 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화가 난 하녀는 그에게 도둑 누명을 씌웠다. 재판정에 선 그는 재판관의 식사로 나온 닭을 가리키며 ‘내가 무고하다면 저 닭이 살아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진짜 닭이 움직였고, 그 순례자는 무죄로 석방됐다.

포르투갈에서 닭은 정의와 행운의 상징이다. 바로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에 가면 온갖 생활용품부터 액세서리까지 온통 닭으로 치장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엔 국조가 닭이다. 원어로는 르코크(le coq), 즉 수탉을 가리킨다. 프랑스 중세시대 닭은 종교적 상징으로 희망과 믿음을 가리켰다. 그런 닭이 국가와 연관되기 시작한 것이 르네상스 시대다. 부르봉 왕족 지배하에서는 왕의 이미지를 보이는 것으로 닭을 자주 사용했고, 동전에 닭 모양을 박았다. 1800년대 중반부턴 국민근위대의 깃발과 제복에 닭을 새겼다. 제1차 세계대전 땐 독일의 프로이센 독수리에 맞서 프랑스의 닭이 항독운동과 프랑스인의 용기를 상징했다. 닭을 브랜드화한 ‘르 코크 스포르티브’란 패션회사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우리나라에도 닭과 관련된 설화가 많다. 새벽을 알리는 닭이 벽사(귀신을 쫓음)의 역할을 한다고 믿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는 신라의 박혁거세 왕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을 전한다. 경주김씨의 시조인 알지는 경주 인근의 계림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계림은 흰 닭이 울고 있는 숲이란 의미다.

충남 천안의 국립축산과학원에서 키우는 토종 병아리들.


갖가지 보양닭
한 사람당 두 마리, 1억 마리 닭과 함께 여름이 익는다

삼계탕

초복·중복이 있는 이 달에만 8000만여 마리의 닭이 희생될 것으로 추산된다. 다음 달 13일 말복까지 합치면 1억여 마리가 넘는 닭이 여름 보양을 위해 제 몸을 내어줄 준비를 하고 있다. 전 국민은 각자 얼추 두어 마리 이상의 닭을 먹고 이 여름, 무더위와 싸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닭이 여름 보양음식이 된 것은 허준의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 같은 옛 문헌이 그 이로움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본초강목』에는 “보양과 보익에 이롭다’고 썼고, 『동의보감』엔 “성질이 따뜻하여 허약한 체질을 보하고 산후의 허한 증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보양닭 열전 복날 보양닭으로는 삼계탕이 으뜸으로 꼽힌다. 어린 닭에 인삼·찹쌀·대추·밤·마늘 등을 넣고 푹 고아 먹는 전통 음식이다. 하나 여름 보양닭에 삼계탕만 있는 건 아니다. 2000여 년 전부터 우리와 생활을 함께한 닭인 만큼 요리법도 다양하다. 특히 지역별로는 특산물과 닭을 함께 조리해 내는 각양각색의 보양닭이 있다.

늙은 호박 영양삼계탕

늙은 호박 영양삼계탕 늙은 호박의 꼭지 쪽을 오려내 씨를 파내고 찜통에 넣어 쪄낸 뒤 닭 속에 대추와 밤을 넣은 것을 호박에 담아 다시 쪄내 먹는다. 말 그대로 늙은 호박 안에 삼계를 쏙 넣어 쪄내는 보양식이다. 호박의 당분은 소화흡수가 잘돼 위장이 약한 이에게도 좋고, 특히 당뇨와 비만 증세에 도움을 준다. 강원도 동해의 향토 요리로 유명하다.

닭고기 버섯온반 평양온반은 일종의 고기국밥으로 대표적인 북한 음식. 닭고기 버섯온반은 닭고기와 버섯을 밥 위에 얹고 닭 육수를 부은 뒤 양념간장을 곁들이는 음식으로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동물성·식물성 식품이 고루 배합된 영양식으로 입안이 헌 환자들도 먹을 수 있다. 최근엔 암환자를 위한 좋은 식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해천탕(전복삼계탕) 바다(海)의 전복과 하늘(天)의 닭이 만났다 해서 붙여진 이름. 경북 울진에서 5년여 전 개발된 음식이다. 자연산 전복, 자연산 송이, 게 껍데기를 먹인 토종닭에 황기 등 한약재 8가지와 은행·대추·밤·가리비 등을 넣어 요리한다. 제대로 진한 국물맛을 느끼려면 2시간가량은 푹 고아야 한다. 먹고 난 뒤 채소와 찹쌀을 국에 넣어 죽을 끓여 먹으면 맛있다.

초교탕 닭고기·쇠고기·도라지·미나리 등을 밀가루에 풀고 개어서 끓인 맑은 장국에 넣어 끓여 먹는 것으로 궁중음식에서 전수됐다. 여러 가지 재료를 밀가루에 개었기 때문에 끓인 뒤 오래 두면 불어서 맛이 없다. 그래서 건더기를 마련해뒀다 즉시 끓여내는 것이 좋다. 부드럽고 담백해 아이들도 잘 먹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충남 청양의 특산품인 구기자를 이용한 구기자찜닭, 전남 강진의 매생이를 넣어 숙취에 좋은 매생이 삼계탕, 경상도 진주와 안동의 매운 찜닭과 제주 토종닭에 찹쌀을 넣어 푹 끓인 제주 닭죽 등도 보양닭 열전에 그 이름을 올릴 만하다.

대를 이은 맛집 어머니에게서 딸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대를 이은 삼계탕 집에서 장수 비결을 들었더니, 역시 ‘닭’이었다. 좋은 닭을 써, 오랜 시간 끓여 내는 것이 맛의 비법이다. 암평아리보다 기름이 적은 수평아리를 쓴다. 오래 끓여도 쫄깃쫄깃하고, 뼈즙이 우러나와 고소하다.

서울 북창동 장안삼계탕(02-753-5834)과 딸이 대를 이은 경기도 분당 정자동 장안삼계탕(031-711-2259)은 49일 된 수평아리인 ‘웅추’를 쓴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재료 말고는 다른 조미료를 안 쓰고, 가마솥에 2시간 이상 끓여 낸다. 신선한 닭으로 국물을 낼 때가 가장 맛있단다. 서비스로 주는 매콤한 닭모래집볶음은 삼계탕 못지않은 인기다. 1960년대 문을 열어 2대째를 이은 서울 서소문의 고려삼계탕(02-752-9376)도 부화한 지 49일 된 수평아리에 각종 한약재를 넣고 3시간 이상 폭 고아 만든다고 했다. 서울 용산에 있는 강원정(02-719-9978)은 친척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질 좋은 닭만 공수해 사용한다. 삼계탕 위에 채 썬 파와 해바라기씨, 검은깨를 고명으로 올려 고소하다. 서울 반포동의 삼계탕마을(02-596-7476)의 메뉴는 삼계탕 하나뿐이다. 찰밥을 닭의 배에 넣지 않고 뚝배기 바닥에 깔아주는 것이 특징이다. 450g의 영계를 쓰고, 각종 한약재를 넣어 12시간 동안 달인 육수를 사용한다.

글=이가영·한은화 기자
사진=최승식·강정현 기자 choissi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