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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경영계획 제출에 쫓기는 조건부승인 은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외자유치냐 합병이냐. ' 조건부승인을 받은 대형은행들이 두 갈래 길에서 고민중이다. 경영정상화계획 제출시한이 닥쳐왔는데도 아직 방향을 못 잡고 초조해 하고 있는 것이다.

조흥.상업.한일.외환은행은 원래 나름대로 추진해 온 외자유치로 정상화를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외자유치계획에 부정적 시각을 보이면서 이 전략은 '희망사항' 이 되고 말았다.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는 정부지원을 전제로 한 외자유치는 승인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특히 정부출자 5억달러 (6천5백억원) 와 2조원의 출자를 각각 요청한 조흥.한일은행에 대해 금감위는 "너무 일방적이다" 고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에 밀려 한일.상업은행은 합병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외자유치가 먹히지 않는다면 합병이 유일한 탈출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실무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같은 처지의 은행장끼리 만나 얘기를 꺼낸 정도다.

합병하려면 인원.조직을 줄여야 한다.

감축폭은 현재 일반행원은 30%, 고위간부는 50%선으로 잡고 있는데 합병하려면 더 줄여야 한다. 외자유치나 합병, 어느 것도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인원을 대폭 감축하기에는 내부진통도 크다.

또 합병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지금까지 공들여 온 외자유치는 '일단정지' 상태가 된다. 외국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투자대상의 실체가 바뀌는 데다 합병결과가 불투명하므로 관망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어느 한쪽으로 확실하게 치고 나가지 못한 채 주저주저하고 있다.

딜레마에 빠진 것은 금감위도 마찬가지다. 합병을 유도하자니 외자유치가 늦어지고 외자유치를 승인해 주자니 합병이 물 건너갈 듯하다.

'합병후 외자유치' 가 순서대로 착착 이뤄질 보장도 없다.

반대로 외자유치가 먼저 성사되면 은행들이 스스로 합병할 필요가 없어진다.

금감위가 합작은행에 대해 합병을 명령할 권한도 없다.

따라서 '외자유치후 합병' 은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

금감위는 아직 확실한 방침을 못 정한 상태다.

다만 은행들이 제출할 경영정상화계획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구조개혁기획단의 연원영 (延元泳) 총괄반장은 "확실한 증자계획이 없으면 합병이 불가피하다" 며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복잡한 문제가 많아 외자유치냐 합병이냐를 딱 잘라 결정하기 어렵다" 고 말했다.

한편 어느 쪽이 비용이 싸게 먹히느냐를 따져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외자유치의 경우 조흥.한일은행의 요구대로라면 2조6천억원이 들어간다.

이에 비해 한일.상업은행이 합병할 경우 17조~18조원에 달하는 부실을 정부가 정리해 줘야 한다.

성업공사는 담보자산을 36%로, 무담보자산을 1%로 할인매입하고 예금보험공사가 출자지원할 경우 외자유치보다 더 비싸게 먹힌다.

그러나 조흥.상업.한일은행이 외자유치만으로 회생하느냐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수억달러 규모의 외자유치만으로는 부실을 완전히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점을 염려해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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