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학파라치’로 서로 고발하는 불신사회 우려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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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정부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학원 직접 규제’라는 칼을 빼들었다. 교육과학기술부·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경찰청 4개 기관이 어제부터 학원의 불법·편법 운영에 대해 단속에 나선 것이다. 단속 효과를 높이겠다며 심야교습 시간 위반이나 학원비 과당 징수 등을 신고하는 사람에게 30만~50만원의 포상금을 주는 ‘학파라치’ 제도(학원 신고 포상금제)까지 도입했다.

그간 학원 단속은 당국의 엄포와는 달리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단속인력 부족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밀고 풍토를 조장할 수 있는 ‘학파라치’까지 등장시킨 것은 모양새부터가 볼썽사납다. 학파라치 제도는 법 위반을 입증할 증거물까지 제시해야 포상금을 줄 예정이어서 외부인의 신고가 용이하지 않다. 결국 당사자인 학생·학부모의 신고에 의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신이 필요해서 찾아간 학원을 학생이 신고할지 의문이고,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엊그제는 촌지교사를 ‘신고’하면 3000만원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이러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불신의 사회가 될까 겁난다. 꼬이고 꼬인 교육 문제라 풀기가 쉽지 않겠구나 이해되지만, 교육 해법으로 비교육적 방안까지 제시되니 안타까운 것이다.

학원 영업시간 문제도 규제가 능사가 아니다. 사교육 수요가 엄연한데 찍어 누른다고 되겠는가. 개인 고액과외가 늘고 새벽·주말반 학원수업이 이뤄지는 등 풍선효과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공교육만으론 부족해 사교육을 찾는 것인데 강제로 막는 게 옳으냐는 반론을 무시할 수만도 없는 현실이다. 학원 교습시간 규제에 대해 자녀 교육권 침해 등을 이유로 헌법소원까지 제기돼 있는 상태다.

학원 규제로는 사교육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 수요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게 근본 해법이다. 물론 공교육 강화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장의 사교육 수요를 대체하는 단기 처방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올해 457개 초·중·고교를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해 총 600억원을 지원하거나 방과후 학교를 활성화하는 게 그런 예다. 궁극적으론 정규교육 질 향상이 사교육 문제를 푸는 정도(正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