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젊은이들 불황늪에 정자수도 감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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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 20대 남자의 정자 (精子) 수가 크게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데이쿄 (帝京) 대 의학부 오시오 시게루 (押尾茂) 연구팀이 20대 34명의 정자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자의 농도나 운동기능면에서 세계보건기구 (WHO) 의 기준을 제대로 충족시킨 청년은 단 한명에 불과했다.

WHO는 정자의 농도가 ㎖당 2천만개 이상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대부분 젊은이들이 기준치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

게이오 (慶應) 대 의학부 요시무라 야스노리 (吉村泰典) 교수팀도 비슷한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 연구팀이 일본인 6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지난 30년간 일본인의 정자수는 1할 가량 감소했는데 20대의 정자수 감소현상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생성의 '내분비 및 환경호르몬의 건강영향에 관한 검토회' 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20대의 정자수 감소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었다.

검토회가 20대 50명과 30~40대 44명을 대상으로 ㎖당 정자 농도를 조사한 결과 각각 평균 4천5백80만개, 7천8백만개로 나타났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인스턴트 식품.용기에 의한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 해석하지만 일각에서는 장기불황 등 우울한 사회 분위기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편 8년여에 걸친 장기불황으로 젊은이들의 소비성향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집은 없어도 자가용은 타야 한다' 며 소비문화를 주도하던 일본 젊은이들의 돈 씀씀이가 바싹 졸아들면서 소심하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광고사 하쿠호도 (博報堂) 생활종합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92년에는 20대 남성 53.6%와 20대 여성 47.6%가 대표적 레저로 '드라이브' 를 꼽았다.

그러나 96년에는 각각 48.8%, 36.5%로 줄어들었다. 대신 '산보' 와 '자전거 하이킹' 은 현저하게 늘어나고 있다.

또 프라다.구치 등 고급브랜드를 선호했던 이들이 중고품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최근 성모 (聖母) 여자 단기대학이 대학생 8백1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중고옷을 선호한다' 고 대답한 학생이 남녀 모두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같은 현상은 한벌당 10만엔 (약 1백만원) 이 넘는 고급브랜드로 몰려들었던 종전에 비하면 큰 변화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의식변화는 '젊은이 패션 1번가' 인 하라주쿠 (原宿)에 지난 3월 대형 중고옷 전문점 '데프라스몬' 이 출현하는 배경이 됐다.

니혼게이자이 (日本經濟) 신문은 최근 특집에서 "자원을 낭비하는 젊은이들의 '1회용 문화' 에 종지부가 찍히고 있다" 고 해석했다.

기성세대들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젊은이들의 절약정신' 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 "유약하고 무기력해지고 있다" 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결국 일본 젊은이들의 약해진 모습은 극심한 정치적 무관심 현상을 빚고 있으며 때문에 민주화 운동이 한창인 아시아 국가 출신 유학생들은 일본 젊은이들을 조롱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

일본유학 7년째 되는 미얀마 출신 한 대학생은 "일본 젊은이들은 왜 자기나라 일인데 그렇게 무관심한지 모르겠다" 고 말했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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