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의 그린수기]10.아버지도 놀란 '연습벌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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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스포츠는 소질도 있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하려고 하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나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무서운 아버지의 채찍과 욕설이 만들어낸 '작품' 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아버지로부터 몇 차례인가 얻어맞고 아버지의 입이 좀 거칠어 욕도 많이 들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나는 결코 일방적인 관계만은 아니다.

나는 아버지를 무조건 신뢰했고 아버지가 시키는 훈련이면 무엇이든 군말없이 따랐다.

그것은 단지 아버지가 두렵거나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내가 따라갈 마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런 혹독한 훈련을 견뎌냈을까. 말을 우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다고 한다.

물을 먹고 안 먹고는 본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아버지가 나를 혹독하게 몰아붙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진정으로 골프를 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골프가 돈이 된다고 생각했고 나는 돈을 벌고 싶었다. 때문에 가혹한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현재의 내가 있게 됐다.

골프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의 일이다.

아버지는 나를 연습장으로 데려가 연습하라고 시키고는 친구분들을 만나러 가셨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에 몰두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버지가 헐레벌떡 달려오셨다.

아버지는 나를 까마득히 잊고 귀가하셨는데 집에 와보니 내가 없어 연습장으로 달려오셨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연습장에서 혼자 자정이 가까워 오도록 연습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시더니 "이 미련아, 아직도 연습하고 있니"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말했다. "세계적인 선수가 되려면 열심히 해야죠. " 고등학교 3년 때인 지난 95년 나는 또 하나의 일화를 만들어냈다.

일본 문부대신배 골프대회에서 일본 국가대표 요시다에게 첫날 73타를 쳐 2타차로 앞섰으나 2라운드에서 80타로 무너져 오히려 2타차로 역전패했다.

너무 억울해 잠이 오지 않았다.

패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동료선수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간에 호텔 복도로 나와 퍼팅연습을 했다. 남들에게 유별나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연습이라도 하지 않으면 못견딜 것 같았다. 그런 나를 보고 다른 선수들도 슬금슬금 나오더니 옆에서 같이 연습을 했고 이 사건은 당시의 동료들에게 추억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그만큼 승부에 대한 집착도 강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를 했을 때 나는 자신에게 더 많은 연습을 벌로 내렸다. 어떤 사람들은 꿈 많은 사춘기를 골프장에서만 처박혀 지냈다며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한창 좋은 시절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골프를 치며 의미있게 보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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