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KBS'TV 역사저널' 구한말 영어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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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근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는 주장이 있었다.

여론에 부닥쳐 쑥 들어갔지만 국제화.세계화 시대 영어가 중요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일. 그런 상황은 1백여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구한말, 중국이나 미국인 통역을 사용했다가 외국과의 광산 채굴권 계약에서 몇번 커다란 손해도 봤다.

'안되겠다' 고 나선 것이 고종. 1886년 국립교육기관 '육영공원' 을 만들어 벼슬아치와 양반 자제들에게 근대식 교육, 특히 영어 교육을 시켰다.

당시의 영어교육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28일 KBS - 1TV의 'TV 역사저널' 이 이 궁금증을 추적했다.

'고종도 영어시험 감독관이었다' 편. 고종이 영어에 쏟은 관심이 얼마나 높았든지 육영공원 학생들의 영어시험 때 세자와 함께 직접 감독을 섰을 정도라는 것. 초창기 육영공원은 2반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관료반. 하나는 양반 자제반. 교사는 미국인 3명이었다.

지리적으로 미국은 먼 거리에 있기에 중국이나 일본처럼 영토를 침략할 우려가 없다는 점이 고려됐다.

물론 고종의 사려깊은 생각. 미국인 교사는 한국어를 못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통역이 필요했으나 학생들이 얼마나 우수했던지 3개월 뒤는 통역 없이도 수업이 진행됐다.

그런데 당시 학급의 모습은 어땠을까. "칠판이 있는 것은 요즘과 같다.

교복은 없었지만 통일된 복장은 갓에 도포차림. 의자에 앉아서는 붓에 먹을 듬뿍 묻혀 한지 위에 정성껏 ABC를 써내려 갔다.

"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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