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현지 은행들 “북한 사람은 계좌 못 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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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무역·고려무역·룡흥수출입상사·만덕수출입상사·대보상사·신합상사….

2005년까지만 해도 마카오에서 이름을 떨치던 북한 회사들이다. 당시 18개의 크고 작은 북한 회사가 마카오에 둥지를 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치품 조달은 물론 수퍼노트(100달러 위조 지폐) 수출까지 담당했다. 마카오는 사실상 북한의 해외무역 거점이자 금융거래 중심지였다. 현지 거주 북한 사람도 한국 교민의 절반인 1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3~4일 찾아간 마카오에선 북한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 마카오의 북한 소식통은 “2005년 미국의 규제 이후 대부분 북한 사람들이 중국의 주하이(珠海)시로 옮겨가 점 조직으로 사업하고 있으며, 그나마 마카오에서 활동하던 20여 명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카오는 아직 북한의 대외무역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마카오 국적을 빌려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람, 은행 계좌 개설 불가능=3일 오후 마카오 중심부 허란위안(荷蘭園) 거리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BDA)의 허란위안 지점. 20년 가까이 마카오에서 북한무역을 총괄했던 조광무역이 2005년 말까지 금융 거래를 했던 곳이다. 지난해 말 새로 부임한 지점장(여)에게 “북한 사람의 계좌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객 비밀이지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내가 부임한 이후 북한 고객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이 지점에서 300m 떨어진 BDA 본점. 창구에서 “북한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마카오 신분증(ID)이나 여권, 마카오 정부가 발급하는 최근 3개월 주소 증명서(금융기관 계좌개설용)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국적이 북한이면 정부가 계좌개설용 증명서를 발급하지 않는다”며 “4년 전 미국 재무부의 BDA 금융제재 조치 이후 마카오 정부의 방침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BDA 건너편에 있는 중국은행 지점의 창구 직원도 “북한인 계좌개설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2005년 9월 BDA가 북한의 밀수 및 무기거래 자금 돈세탁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미국 금융사와 거래를 중단시켰다. 또 BDA의 52개 계좌에 예치된 북한 자금 2500만 달러를 1년9개월 동안 동결했다.

◆사업은 점 조직으로=BDA 본점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차이나플라자(中華廣場) 빌딩 18층에 위윈밍(玉允明) 무역회사가 있다. 현지인 이름의 마카오 회사이지만 실상은 2005년까지 마카오의 북한 자금을 관리했던 북한 회사다. 3일 오후 찾아갔으나 사무실은 굳게 닫혀 있었다. 빌딩 관리사무소 직원은 “2005년 이후 북한인 출입이 거의 없었으나 우편물은 왔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들어선) 올 1월 이후에는 우편물조차 배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리회사 측은 그러나 “매월 임대료는 낸다”고 밝혔다.

전 BDA 고위 관리였던 찬모씨는 “현재 마카오에 있는 현지인 차명계좌를 관리하는 회사여서 사무실을 폐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빌딩 1층에 있는 개성 고려인삼 판매점은 지난해 3월 문을 연 마카오 유일의 북한 제품 판매점이다. 그러나 가게는 홍콩의 더청싱예(德成行業) 주식회사 소속이다. 홍콩에서 사실상 북한무역을 총괄하는 회사다. 가게 내에는 북한 국영회사인 조선장수무역과 북한 상업회의소(상공회의소), 북한 외무성 영사국의 보증서·계약서가 걸려 있었다.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은 “북한과 한국·미국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요즘 북한의 해외무역은 홍콩 더청싱예가 거의 담당한다고 보면 맞다”고 말했다. 마카오 내 북한인들의 거점역할을 했던 북한 음식점 ‘해피하우스’도 몇 년 전부터 북한 국적을 숨기기 위해 상호·업종을 바꿔 일식·양식당으로 영업하고 있다.

마카오=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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