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본 공립학교 개혁 …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어느 나라에서나 공립학교 개혁은 교육정책의 핵심 과제다. 또 개혁의 요체는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 이 같은 개혁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례가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 고교별 도쿄대 합격자 수에서 주요 공립고는 증가한 반면 명문 사립고들은 감소했다는 것이다. 공립고들이 자율적으로 다양한 학력강화 방안과 창의적 교육 방식을 추진하면서 경쟁력을 갖춘 결과인 것이다.

일본의 공립고가 살아난 결정적 계기는 2003년을 전후해 단행된 학구제(學區制) 폐지다. 우리로 치면 평준화 제도가 없어지면서 공립학교도 사립처럼 학생이 학교를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공립고 간에 학생의 선택을 받기 위한 잘 가르치기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공립고마다 앞다퉈 수업시수 확대, 토요일·방학 보충수업, 교과별 특별강좌, 학교 특성화 프로그램 등을 통한 학력 신장에 나섰다. 공립고가 기피 대상에서 선호 대상으로 탈바꿈한 기적을 낳은 것이다.

물론 일본과 한국의 교육 상황은 다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공립학교가 제 역할을 못하면 공교육 활성화는 요원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자립형사립고나 특목고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반 공립고가 공교육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공립학교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 경쟁’에서 열외가 돼선 안 된다. 당장 내년에 서울에서 처음 시행되는 고교선택제가 시험대다. “학교가 학생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일본 히비야고 교사의 말을 남의 얘기로 흘려들어선 안 된다.

내년부터 자율형사립고 100곳이 생기게 되면서 일반 공립고는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 있다. 경쟁에서 뒤처져 비선호 학교로 낙인찍힐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런 패배주의는 공교육 살리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교 구성원이 머리를 맞대고 학생이 오고 싶어 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각오부터 다지는 게 올바른 자세다. 공립학교가 잘 가르치기 경쟁에 앞장설 때 공교육이 제대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