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독서고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읽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딸의 책상을 정리하다 마주한 귀욤 뮈소. 낯설다…. 언뜻 제목만 봐선 통속적이고 다소 유치할 것 같은 선입견. 무더위에 책장이 술술 넘어가준다면 끝까지 읽겠다 싶어 집안 청소하다 말고 집어든 책. 세 시간을 못 넘겨 마지막 장을 덮었다. 아쉬움과 허전함 속에 긴 여운이 남는다. 제목의 당신이 연인일거란 확신은 이제 연인일 수도 과거와 미래의 ‘나’일수도,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고 느껴진다.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순의 유능한 외과의 엘리엇은 캄보디아의 오지마을에서 아픈 아이를 고쳐주고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알약을 얻는다. 알약을 먹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된 그는 30년 전 자신과 만난다. 젊은 시절 인생에 대한 고뇌, 성찰, 경험, 지혜, 모든 것을 짧은 삶에서 얻을 수 없었으므로 30년이 지나 돌이켜 보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하는 후회가 든다. 그 시절, 그 푸른 청춘, 그 젊음과 다시 마주할 수만 있으면 그렇게 값진, 그렇게 소중한 어쩌면 내 인생 전부를 바꿔놓을 만한, 그때는 몰랐던 일들을 그리 가벼이 흘려보내지 않으리란 깊은 회한이 가슴을 울린다. 목숨과도 같이, 아니 그보다 더 사랑한 여인 일리나와의 만남, 사랑, 그리고 또 이별.

어느 수필의 구절처럼 우리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평생을 못 만나고 살기도 하고 혹은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던, 그 가슴을 울리는 글귀처럼 말이다. 너무나 사랑한 여인을 살리기 위해 평생을 죽은 사람처럼 여기며 살다 예순에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는 주인공의 짧지만 불같은 삶이 나이 쉰을 향해 가는 내 삶과 오버랩된다.

엘리엇의 시간 여행은 내가 남은 십여 년(엘리엇처럼 예순에 생을 마감한다면)을 과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강한 물음을 던진다. 내겐 과연 일리나와 같은 연인과 엘지와 같은 딸과 매트 같은 친구가 있을까? 그래도 엘리엇은 행복했구나! 전문성을 인정받는 일과 목숨 걸고 지켜주고픈 연인과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친구와 딸. 어쩌면 이 삭막한 세상을 예순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을 함께 할 길동무가 넷이나 있지 않았는가. 한밤중에 시체를 치워야 한대도 달려와줄 친구와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 아이.

깊어가는 이 여름, 귀욤 뮈소와 함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떠올리면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궁극적으로는 현재에 충실하란 작가의 메시지를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김명순(45· 주부·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이 달의 서평 주제는 ‘휴가지에서 읽을 만한 책’입니다. 독서캠페인 ‘Yes! Book’의 전용사이트(joins.yes24.com)에 독후감을 올려주세요. 채택된 분에게는 20만원 상당의 도서상품권을 드립니다.

주관 : YES24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