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글밭산책] 세상의 속물들에게 고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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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중에 J D샐린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단 한권의 책으로 오래도록 세계의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오른 사람, 출간 직후 미국의 수많은 학교에서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그 후 5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매년 30만부 이상 팔리고 있는 책의 작가, 기자건 출판사건 자신의 연락처를 가르쳐 주는 친구와는 누구라도 절교를 서슴지 않았던 괴팍한 그 사람 …. 폴 사이먼과 우디 앨런의 뉴요커 정신의 시발점이 된 사람, 존 레넌의 암살범이 현장에서 들고 있던 책의 저자,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내게 여러날 밤을 잠 못 들게 했고,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와 더불어 젊은이들에게 우선 권하는 단 두권의 책 중 한권의 저자인 이 사람을 말이다. 그는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 의 주인공 홀든이 나이를 먹어서 바라보는 세상을 이 작품에서 그려내고 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인 10대 홀든이 정신병동으로 간다면 천재이자 시인인 이 책의 주인공 시모어 글래스는 부인과의 휴가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샐린저의 글들을 읽다보면 한 마디로 이 세상은 제정신을 가지고는 도저히 제대로 살 수 없는 곳이다. 작가 자신이 유대계의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뉴욕의 중산층으로 살았기에 그것은 일견 자본주의, 더 나아가 얼핏 쓸모 있는 것만을 취하려는 속물들에 대한 처절한 저항으로 읽힌다. 그것이 반 자본주의적으로 읽히는 이유는 샐린저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시모어 글래스의 결혼식날 신랑인 그가 잠시 실종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때문에 이 책의 화자인 동생 버디는 형 생각의 편린들을 적은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형이 신혼여행을 떠난 후 그 일기를 읽는 것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녀는 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오가는 방식, 그리고 나타나고 사라지는 방식을 두고 늘 걱정한다.그녀는 사랑이 새끼 고양이처럼 늘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의 현실성을 의심한다.사랑이 정말 슬픈 일임을 신은 안다. 인간의 목소리는 세상의 모든 것의 신성함을 모독한 음모를 꾸민다.”

주인공 시모어는 어린 시절부터 투명한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가 부인 뮤리얼과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그녀의 가족과 결합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부인에 대한 사랑 말고도 실은, 외부의 규격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야함을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갈등은 당연하다. 전쟁 후에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장몽의 물음에 그는 죽은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이 말은 선불교의 선승의 말을 차용한 것인데 그의 이유를 빌리자면 “죽은 고양이에는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모로 대변되는 이 세상은 그를 “정신 분열적 인간”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그는 도망치려고 했을까. 그러나 그는 결혼을 하고 6년 후 자살한다. 그가 택하고 만 그 형식,결혼에 대해 그는 이미 이런 기록을 남겨 놓는다.

“오 하느님 도와 주소서. 한 가지, 무시무시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사실은 내 연인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영원하며 근본적으로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애정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그녀의 근원적인 욕구는 영원한 소꿉 장난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그녀가 결혼으로 달성하려는 목표들은 아주 터무니 없으면서도 감동적이다. (....) 그리고 스스로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끼면서도 그 집에서 나오고 싶어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물, 모든 사물을 통해 흘러다니는 시(詩)의 커다란 흐름을 평생 한번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차라리 죽는 게 낫겠지.그래도 그녀는 식료품점 앞에서 발을 멈추고,정신분석가를 만나고 매일 밤 소설을 읽고, 거들을 입고, 뮤리얼의 건강과 번영을 위한 계획을 짠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나는 그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시모어가 말하는 대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용감한 ”사람들이 득시글거린다. 그들이 자신의 값을 매겨달라고 길게 줄을 서 있다.그런 세상에서 “값을 매길 수 없게”죽은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이 작가의 희망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목수들이 제 키보다 더 높이 대들보를 올릴” 생각이 없는 한 그리스의 위대한 여성 시인 사포가 말한 대로 “아레스 ”같은 신랑은 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는 것이다. 한번쯤 우리들 키보다 더 높게 대들보를 올릴 수 있을까? 나는 생각해 보게 된다. 덥다!

공지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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