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e칼럼

가치가 충돌하면 답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09.07.02 08:14

가치관의 충돌? 이건 이념적 차이만큼이나 해소하기 어려운 문제다. 함께 돈을 벌려고 모인 집단인 회사 내에서 돈만 벌면 되었지 무슨 가치관 따위를? 물론, 이런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나는 일이 흔하건 아니다. 하지만, 없지 않고, 충돌이 발생하면 아주 고질적이다.

J부사장은 매우 도전적인 사람이다. 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 들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한다. 이 때문에 위험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 성공을 거두면서 회사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처럼 모험을 즐기는 그지만, 회계사로서 직업윤리에는 충실하려 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G사장은 사업 면에서는 별로 모험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기존의 사업에서 충실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고 믿는 그는 이미 확보한 고객을 관리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G사장의 경우에, 단골 고객이 원하면 뭐든지 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일, 아주 중요하다. 한계를 넘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G사장은 회계사로서 직업윤리의 한계를 자주 넘곤 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회계사가 해결사는 아닌데, 그는 기꺼이 해결사 역할을 자임했고, 은밀하게 사람을 동원해 고객의 채무를 받아주는가 하면, 해외로 야반도주한 채무자를 국내로 소환해 재판정에 올리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회계보고서의 조작? 남들도 다 한다는 그런 일은 워낙 많아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G사장이 이런 일을 벌일 때마다 J부사장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파트너로서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법적인 책임 이전에, 갈등이 너무 돼 살 수가 없었다. ‘먹고 살려면 할 수 있나?’ G사장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 말, 많은 것을 용서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용서하게 만드는 말도 아니잖아? 끊임없이 뇌리에서 ‘퐁퐁’ 샘솟는 의문부호도 억제할 수 없었고.

그래서 처음에는 설득을 해보기로 했다. 파트너 회의석상에서 정중하게. ‘야! 우리 꼭 이렇게 돈 벌어야 하냐? 이렇게 외줄을 타야 하냐고? 안 그래도 먹고 살 수 있잖아? 이쯤에서 그만 접고, 회계사의 윤리, 그거 있잖아 그거 지키면서 사업하자, 응!’

아~니, 그런데 이런 그의 충심어린 설득을 발로 걷어차 버리는 것 아닌가! 그 사이에 많이 커버린 G사장에게 J부사장의 설득은 더 이상 영향력이 없었다. 파트너로서 상호존중 정신? 그것도 별로 호소력이 없었다. 오로지 1위를 향해 갈 길을 갈 뿐이라고 강변하는 그를 보면서, J부사장은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내가 너무 키워줬나?’

이후, J부사장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어쩔 수 없이 파트너 관계를 청산하고 다른 회계법인으로 일자리를 옮기거나 맞서는 것 밖에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분까지 포기하면서 파트너 직을 사퇴해? 아니면, 안면몰수하고 한 번 붙어봐?

선택의 기로에서 J부사장은 ‘가치’에 모든 걸 걸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길을 갈 수는 없는 법! 파트너를 한 명씩 만나 설득하는 한편, 사내에 은근슬쩍 G사장의 위험한 행보에 관한 정보를 흘렸다.

처음부터 쉬운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싸움은 길고도 지루하게 전개되었고, 답이 없는 가치 논쟁은 점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현실론과 이상론이 대립하더니, 그 다음에는 진위 공방으로 번지면서 누가 옳은 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J부사장은 말한다. ‘가치의 충돌? 사내갈등의 원인 중에서도 가장 고질적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돈이나 이권보다도 더 중요해질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가진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걸 입증하기가 쉽진 않더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돈과 이권, 그 이상의 것은 없다고 믿는가? 돈과 이권이 많은 부분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부분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윤리와 도덕까지 개입된 가치의 문제가 제기되기 마련이고, 이런 문제는 한번 제기되면 훨씬 끈질지게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결국 돈과 이권이 문제인 것을 가치의 문제로 포장하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내정치 게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을 맞은 사람들에게 이런 조언을 하곤 한다. ‘가능한 게임에 가치를 개입시키지 마십시오!’ ‘가치를 개입시키는 순간,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해질 수 있고, 당신의 통제 밖으로 튀어나갈 개연성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가치를 들먹이는 것이 훨씬 ‘간지’ 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간지’ 좋아하다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한 번 더 생각할 일이다.

J부사장의 경우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갯벌 속에 빠진 강아지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전투구 상황에서 내가 옳다는 걸 입증하는 일, 정말 힘들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지만, 이미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 ‘그대로 GO!’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J부사장은 밀려났을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과는 헤피 엔딩, 결국 G사장을 몰아낸데 이어 그 자리에 앉는, 뜻하지 않은 소득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이전투구 상황에서 때마침 G사장의 무리한 해결사 역할과 관련한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드러난 것. 그것이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지금은 사장이 된 J부사장은 그때의 일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역으로 몰려 회사에서 쫓겨나야 할 상황에서 기사회생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 조언 한마디!

‘함부로 가치 논쟁을 벌이진 마십시오. 그러나 옳다는 믿음이 있다면, 치밀하게 준비해서 반드시 성공하십시오!’ 가치를 개입시키려면, 훨씬 더 철저하게 근거를 확보하고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가치 논쟁을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끝난다는 뜻이다. 어때? 무섭지?

이종훈 칼럼니스트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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