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한국, 아시아 변방으로 떨어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현대사회는 신문.잡지.방송.인터넷 매체 등으로 가위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하겠다. 나라 안팎에서 시시각각 보도되는 수많은 뉴스가 우리 머리를 어지럽게 하면서 현대인들은 그중에서 무엇이 우리 국가와 인류에게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고 무엇이 일회용 해프닝인지 분간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지식인은 21세기의 커다란 역사 흐름 속에서 앞으로 아시아가 국제무대에서 경제.군사.정치적 역할을 상대적으로 높여갈 것이라는 것을 중대한 현실로 인정하고 있다.

*** 세계 속 아시아 위상은 회복

지난 2~3세기 동안의 세계 역사는 크게 아시아의 몰락과 서방세계의 득세로 규정지을 수 있는 데 300년 전인 1700년 아시아의 경제규모가 미국과 유럽 전체 경제를 합친 것보다 3배나 되었으며 1820년까지도 2배나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658~1701년 인도 무굴 제국을 다스렸던 아우랑제브 황제의 연간 수입은 그 당시 프랑서에서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하고 극도의 사치와 권력을 누렸던 루이14세의 일년 세수의 열배가 넘었었다.

그러나 19세기 초부터 가속화한 아시아의 상대적 침체는 20세기 중반 그 극에 달해 1952년 아시아 경제규모는 유럽.미국 경제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즉 250년 사이에 아시아의 경제는 유럽.미국 경제의 3배에서 3분의 1로 추락하였다는 얘기다.

아시아의 경제가 이처럼 급감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아시아의 영향력이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치.군사.문화 등 다른 분야에까지 통틀어 하강했음을 의미하였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이 박력있게 전 세계로 뻗어나갈 때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우물안 개구리처럼 쇄국주의와 내란.내전.당쟁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민중은 기아와 질병과 무지의 3중고를 겪어야 했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아시아 경제는 다시 서서히 부흥하기 시작,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유럽.미국 경제규모의 3분의 2 정도에까지 도달했으며 앞으로 50년만 더 있으면 유럽.미국 경제와 대등한 규모에 도달할 것이 예상된다. 이러한 아시아 경제의 역사적 회복은 50년대 시작된 일본 경제의 부흥, 60년대에 시작된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네마리 용' 경제의 도약, 80~90년 대부터 본격화한 중국 경제의 발전과 최근의 인도 경제 재기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인도.일본 등 아시아 3대 대국의 경제발전이 21세기 아시아 중흥의 근간을 이룰 것이며 상대적으로 아시아 네마리 용의 역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볼 때 지난 30~40년 동안 반짝했던 하나의 각주(footnote)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미 중국 경제의 개방과 더불어 점차 제 설자리가 좁아진 홍콩은 광저우.선전.마카오를 중심으로 한 주강 삼각주의 일부로 흡수돼 가는 과정에 있고, 대만 경제도 이미 중국 본토로의 투자 이전이 가속화하면서 산업공동화가 계속되고 있으며 결국 중국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 흡수될 날만 기다리는 형편이다.

*** 중심국 여부 우리 스스로에 달려

중세기에 독립국가로 번창했던 베네치아.제노아.나폴리 등 도시국가들이 결국 이탈리아 반도에 흡수 통합됐듯, 40년 전 말레이시아 정부의 화교차별 정책에 분개해 독립국가로 떨어져 나갔던 싱가포르도 21세기에 말레이시아 경제가 계속 세계화.선진화되어 인종차별이 점차 소멸되면 다시 말레이시아에 흡수될 것으로 점쳐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시아 네마리 용 중 하나였던 우리 한국의 장래는 어떠할까. 대만.홍콩.싱가포르가 다시 역사적 숙명이었던 주변 대국들의 일부로 흡수되듯 우리도 남북한이 통일은 되겠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적 숙명이었던 중국의 한 보잘 것 없는 동이(東夷 : 동쪽 오랑캐 나라)로 전락하고 말것인가. 혹은 우리 통일한국도 만주까지 뻗어나갔던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아 중국대륙의 경제발전에 과감히 참여할 것인가. 그리하여 시베리아의 자원개발을 주도하며 아시아 대륙의 중개국으로 한번 멋지게 우리 배달민족의 능력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선택은 우리 스스로에게 달렸다.

박윤식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 국제금융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