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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 10 ‘2009 오디세이’전 3 - 구본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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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구본창(56)씨가 1991년부터 8년에 걸쳐 발표한 ‘태초에’ 연작 중 한 점. 인화지 연결에 실을 사용한 것에 대해 “전통적인 보자기가 갖고 있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가로 490cmX세로 175cm.


험한 사진의 수용단계를 거친 한국에서는 유독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 비판하는 쪽에선 현실을 기록만할 뿐 자아를 직접 반영하지 못하는 창조자의 이성과 감성의 결핍을 문제삼았다. 게다가 오랜 공모전 스타일의 잘 찍은 사진 한 장에 탐닉하는 살롱주의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또 ‘결정적 순간’만을 포착하려는 지나친 순간성과 객관적 기록성의 탐닉은 예술이 가져야 할 다양한 표현성과 매체의 활용성이 부족한 것처럼 비쳐졌다.

구본창은 이때 나타난다. 1985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한국사진에서 처음으로 보여준 것은 생경한 사진의 대면 방식이었다. 충격적인 자기 독백이었고 내적 거울이었고 자아 반영이었다. ‘열두 번의 한숨’(1985), ‘긴 오후의 미행’(1988), ‘생각의 바다’(1990)로 이어지는 그의 사진세계. 이는 한국사진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표현의 혁명, 스타일의 혁명, 의식의 혁명이었다.

구본창이 한국현대사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 계기는 88년 5월에 워커힐 미술관에서 열린 ‘사진, 새 시좌’전이었다. 구본창이 기획한 이 전시에서 유학파를 중심으로 소위 ‘만드는 사진(making photo)’이 선을 보였다.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 보수로부터 ‘사진을 망친다’는 라는 격렬한 반응이 있었다. 진보로부터는 ‘더 이상 순수사진이란 없다’는 뜨거운 동조와 호응이 있었다.

전시가 보여준 다양한 매체의 활용, 수용, 혼용은 그때까지 스트레이트한 사진만을 신봉한 한국 사진의 미명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91년 11월 경기도 장흥 토탈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사진의 수평’ 전에도 중심부에 구본창이 있었다. 이 역시 한국사진의 지각변동을 초래한 역사적 전시로 기록된다.

‘태초에(In the Beginning)’는 구본창의 90년대 초기작이자 대표작이다. 더 이상 있는 그대로를 찍지 않는다는,현실 리얼리티의 구속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동시에 표현을 위해서라면 어떤 도구, 수단, 매체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진보성과 혁신성을 함께 한다. 그래서 ‘태초에’는 작가와 한국사진의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보게 만드는 랜드마크(land mark)로 평가된다. 작가는 캄캄한 암실에서 작은 사이즈의 인화지를 재봉틀로 재봉해 대형 인화지로 만들어 낸다. 겹겹이 쌓인 인화지는 삶의 무게이자 나이테가 된다. 재봉선은 삶의 상처이자 씨줄·날줄로 엮이는 삶의 의미망이 된다.

한 사진가에게 시작점이 중요한 것처럼 한 나라의 예술도 시작점이 중요하다. 구본창과 한국 현대사진은 그 점에서 한 시대, ‘태초에’를 공유했다고 할 것이다. ‘작품으로 위대해지고 작품 가격으로 유명해지기는 쉽지만 죽어서 그리움을 안겨주기란 쉽지 않다’고 누군가 말했다. 구본창은 훗날까지 오랫동안 그리움을 줄 수 있는 사람중 하나라고 할 수있다. 

진동선 (울산국제사진페스티벌 총감독)

◆구본창은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기업에서 무역업무를 보다가 유럽지사에 근무할 당시 사표를 내고 사진수업을 시작했다. 함부르크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하며 당시 ‘신주관주의’ 사진 경향을 받아들였다. 내면 의식 속에 잠재한 꿈과 환상, 초현실적인 경험에서 얻은 에너지를 절제되고 섬세한 터치로 드러내 국내외 사진계에서 주목받았다.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 및 런던 세인트마틴스쿨 초청 교수를 역임했으며, 2008년 대구사진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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