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퇴출]드러난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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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5개 은행 영업정지가 발표된 첫날부터 간단치 않는 문제점들이 돌출하고 있다.

'은행퇴출' 이 사상 초유의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전계획이 그만큼 치밀하지 못했던 탓이 크다.

특히 막판까지 인수은행과 퇴출은행의 선정이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인수은행쪽에서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데다 퇴출은행쪽에서는 협조를 거부하며 인수에 강력히 저항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퇴출은행 직원들은 거래고객의 불편을 볼모로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업무를 거부하고 있다.

충청은행처럼 업무정지가 이뤄지기 직전인 28일 밤 직원들이 전산조작을 통해 수백억원의 퇴직금을 직원들의 계좌로 이체하는 곳마저 나타났다.

금감위는 은행은 문을 닫아도 고객에게는 아무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인수작업이 시작된 29일 퇴출된 5개 은행 지점들중 정상적으로 업무를 재개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애초에 예금지급 업무가 정상적으로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은 퇴출은행 직원들의 협조를 전제로 한 것" 이라며 "전산문제 등에 대한 협조가 없으면 업무 마비상태가 장기화할 수도 있다" 고 말했다.

도상연습까지 마친 인수매뉴얼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이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된 것은 '안심하라' 던 정부의 말만 믿은 고객들. 우선 창구에서건 현금지급기를 통해서건 모든 예금의 입출금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인수은행에는 급전이 필요한 개인이나 자영업자의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태가 연장될 경우 재산세 등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자동이체로 결제하던 고객들은 통장에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게 연체에 걸릴 가능성도 있다.

퇴출은행과 거래하던 기업의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월말에는 평소에도 기업 결제와 관련된 업무가 폭주하는데 이렇게 영업재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거래기업들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사태를 겪을 전망이다.

인건비 지급 등을 앞둔 기업의 경우는 직원들까지 피해를 보게 됐다.

그러나 인수은행들 관계자들은 일단 퇴출은행 직원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일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업무 정상화에 가장 중요한 것이 전산시스템의 재가동인데 인수은행 인력으로는 낯선 시스템의 운영은 커녕 보안장치를 풀지도 못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퇴출은행 전산담당자들이 끝내 협조를 거부할 경우 외부 용역회사 직원들을 동원해 비밀번호부터 풀어내야 하는데 그렇다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 이라면서 "이런 최악의 사태는 없기만 바랄 뿐" 이라고 말했다.

금감위 역시 별다른 대안을 마련해 놓지 못한 상태. 대책이라면 "업무협조를 하는 것이 향후 재고용에도 도움이 될 것" 이라는 '당근' 과 "농성 등에 참가할 경우 불이익이 있을 것" 이라는 '채찍' 을 병행, 농성장에 나간 직원들의 업무복귀를 유도하는 것이 고작이다.

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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