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주택담보대출 고삐 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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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융규제 가운데 총량을 미리 정해 놓고 배정하는 방식은 극단적인 편에 속한다. 시장에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하기보다는 정부가 행정 재량권이라는 ‘완력’으로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그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일부 지역의 집값이 오르고 주택담보대출이 계속 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시중은행들이 하반기 주택담보대출을 얼마나 할 것인지 각자 목표액을 제출받아 분석에 들어갔다. 이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5일 “감독 당국이 모니터링을 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의 총량 규제를 할 수 있고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의 제한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금감원은 공식적으론 신중한 입장이다. 김영대 은행서비스총괄국장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수요가 늘고 있어 점검을 강화한 것”이라며 “총량규제는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움직임은 총량규제와 유사한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대출계획의 총량을 보고하라는 것은 결국 그 이상으로 대출해주면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농협은 하반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을 최대 1조5000억원으로 묶기로 했다. 상반기 실적(약 1조9000억원)보다 4000억원을 줄였다. 농협은 또 주택담보대출 취급 실적은 영업점 평가 점수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영업점들이 경쟁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늘릴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상반기 주택담보대출을 1조9000억원 늘린 신한은행도 하반기엔 증가액을 1조6000억원으로 낮췄다. 하나은행은 하반기 증가액을 상반기와 비슷한 6000억~7000억원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5월 주택담보대출이 15조원 증가했다. 6월에도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대출이 크게 증가했던 2006년 하반기(18조2000억원)와 비슷한 규모가 된다. 올 초까지만 해도 경기침체로 부족해진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받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저금리를 활용해 집을 사두려는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는 게 금감원의 시각이다.

건설·부동산 업계는 초긴장 상태다. 이번 규제가 부동산 경기 회복의 싹을 아예 잘라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업체 임원은 “서울 일부만 분양이 될 뿐 지방은 아직도 한겨울인데도 대출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너무 성급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은행권도 부정적이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고용이 줄어드는 상태에선 집을 담보로 생활자금을 빌려 쓰도록 해야 하는데 과도하게 누르면 가계가 크게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출 규제는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미시적으로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금융연구원 장민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일단 집값이 과도하게 오르는 지역에서만 대출 한도를 관리하고, 경기 전체가 살아난다고 판단하면 금리 인상 등 본격적인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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