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인도에 뒤처진 통계학 수준 향상 기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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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수리통계학회(IMS) 아시아·태평양 회의 창립대회가 나흘 일정으로 28일 서울대에서 개막했다. 1935년 미국에서 공식 출범한 IMS는 100여 개국 45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학술단체다. 이론 통계학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다. IMS가 아·태 지역에서 2년 마다 열기로 한 국제회의의 창립대회를 서울에 유치한 한국통계학회 전종우(61·서울대 통계학과 교수·사진) 회장을 만났다.

전 회장은 “한국의 통계학은 아시아 4개국(한국·중국·일본·인도) 중 가장 뒤처져 있다”며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 통계학계가 질적 향상에 나설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도의 통계학 수준이 높은 것은 근대 통계학의 발상지인 영국의 영향 때문이다. 중국의 ‘인해전술’적인 학술 공세도 거세다. 세계적 권위를 갖는 ‘통계학 연보(Annals of Statistics)’ 발표 논문의 40%가 중국계 학자들의 연구일 정도다. 일본은 대학에 별도로 ‘통계학과’가 없지만, 수리경제학·응용수학 등 전문분야에서 세계적 통계학자들이 많다. 한국은 70여 개 대학에 통계학과를 개설하고 있을 만큼 인력의 수적인 면에선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적 첨단 이론 동향과 동떨어진 게 문제라고 한다.

전 회장은 “유전공학, 기상 예측, 위성사진 분석 등 21세기의 학문은 엄청난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통계학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특정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는 작업에도 통계학이 활용된다. 2만~4만 개의 유전자를 일일이 다 살필 수 없기 때문에 통계학적으로 모델링을 해 중요 유전자를 추려내는 것이다. 수천, 수만 장의 인공위성 사진을 판독하고 데이터를 압축 전송하는 데도 통계학이 활용된다. 전 회장은 “이렇게 수만 개의 데이터를 동시에 다루는 ‘초(超)고차원 모형 이론’이 국제 학계의 ‘핫 이슈’인데 한국은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응용 위주의 통계처리 실무에만 치우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내 통계학이 그나마 지금의 수준까지 발전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 곳곳에서 데이터베이스에 따른 합리적 경영과 숫자에 기반한 정책 결정이 강조되면서 통계학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전 회장은 “대통령 후보 경선에도 여론조사를 활용할 만큼 통계에 대한 ‘맹신’이 큰 사회가 한국이지만 정작 통계에 대한 이해는 깊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통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첨단 학문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7월 1일까지 서울대 관악 캠퍼스에서 열리는 IMS 아·태 회의엔 23개국에서 1000여 명의 학자가 참석해 4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글·사진=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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