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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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어머, 그 다음이 더욱 궁금해지네요. "

"어쨌는지 아십니까? 나는 울고 있었지만, 흐릿하던 정신은 명료해지기 시작했어요. 야금야금 가슴과 머리를 어머니에게 밀착시켰어요. 머리 여기 있으니까 제발 많이 쓰다듬어달라는 듯이 말입니다. 어머니와 나는 그런 면에선 서로 궁합이 맞았던가 봅니다.

우리는 남의 눈총 따위는 아랑곳 않고 미아보호소에서 나오지 않고 울면서 쓰다듬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많은 시간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갔던가 봅니다.

처음엔 우리 모자의 극적인 해후에 아낌없는 동정을 보냈던 주위의 구경꾼들이 시큰둥해서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못마땅한 얼굴이던 보호소 직원의, 어머니와 아들이 어디 당신들뿐이냐는 핀잔을 듣고나서야 보호소를 나설 수 있었어요. "

"어릴 적엔 영악한 아이였던가 봐요?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냐고 물었었는데…, 어린시절에 잠깐 동안 어머니를 잃으셨던 얘기로 대신해주셨네요. 그게 두루뭉수리란 거죠? 물론 저도 두루뭉수리로 물었으니까 피장파장이네요." "몇 번 만나뵙기는 했지만, 성민주씨를 소상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니까…. " "그 말씀에 동의해요. 오늘 밤 진부에서 체류하실 거면, 한씨네 행중을 저녁초대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저기를 보세요. " 성민주는 눈짓으로만 길 건너를 가리켜 보였다.

소스라친 철규가 힐끗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그때 벌써 좌판을 깨끗하게 거두고나서 언제부턴가 줄곧 길 건너편의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곤두박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마 하고 철규는 길을 건너갔다.

그러나 철규가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변씨가 먼저 비틀어 물고 나섰다.

"한선생 시방 우리 두 사람 멀찌감치 보초 세워놓고 연애하고 있는 거여? 흥정하고 있는 거여?" "형님도 아시다시피 저 분은 우리 단골고객이 아닙니까. 순수한 고객의 입장에서 저녁을 사겠다는데 물론 반대는 않으시겠죠?" "우리 일행에게 티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저녁을 사겠다고? 우리 단골손님께서 낚싯밥 한번 멋부려서 던지는구만.

미련한 놈 같았으면 달려가서 큰절이라도 올릴 뻔했네. 속내를 알고보면 한선생에게만 사고 싶은 저녁을 우리 같은 불청객이 곁다리 붙어서 밥을 축내면 쓰겠어. 공연히 선심 쓸 것 없어요. 우리가 왜 남의 고상한 식탁에 눈치도 없이 때묻은 턱을 걸고 해죽거려? 우리가 밥이 없나 술이 없나? 호텔 가서 식사하고나면 내일 하루는 굶어도 되나?" 이죽거리는 거조를 보자하니 까닭없이 뒤틀어진 변씨의 심사를 되돌려 앉히기는 손쉬울 것 같지 않았다.

뒤통수에 꽂혀 있는 성민주의 시선을 따갑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속시원한 해법을 찾을 수 없었던 철규는 낭패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철규의 곤혹스런 처지를 재빨리 눈치챈 태호가 나섰다.

남의 복장에 불지르는 솜씨에는 이골이난 변씨였지만, 훌쩍 행중을 떠나버릴까봐 가슴을 졸이고 있던 태호가 중재에 나서자, 내키지 않는대로 동행할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성민주가 묵고 있다는 호텔에는 단 한 발짝도 들여놓을 수 없다고 버티었다.

철규가 성민주와 일행 사이를 오가면서 절충한 나머지 결국은 땅거미식당에서 만나 저녁을 먹기로 작정이 되었다.

단골 여인숙을 숙소로 정한 다음 약속된 시간에 땅거미식당으로 찾아갔을 때는 놀랍게도 그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묵호댁이 자리를 비운 식당에는 동업하던 안주인 혼자서 꾸려가는 눈치였다.

안면이 없지 않은 그들이 술청으로 들어섰지만, 묵호댁의 행방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는지 안주인은 오랜만이라고 화들짝 반기기만 하였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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