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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가깝다’ 판정 받은 소년 치료 않고 석 달 뒤 회복하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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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슈 추적  대법원 판결에 따라 23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김모(77·여)씨가 당초 예상한 3시간을 넘겨 사흘째 스스로 호흡하고 있다. 대법원 오석준 공보관은 25일 “지난해 10월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자문의사가 ‘의식 회복 가능성이 없고 자발(自發) 호흡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서를 냈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인공호흡기 제거 판결을 했는데 김씨의 생존이 길어지면서 상황이 일부 달라진 것이다. 대법원은 현재 상황에 “현대의학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김종성 교수는 “김씨처럼 뇌 손상을 입은 환자의 경우 향후 상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며 “호흡기 제거 후 10년을 더 산 미국의 캐런 퀸란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뇌혈관 검사를 받다 식물인간이 된 60대 여성이 10년 넘게 생존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 문헌에는 식물인간으로 지내다가 의식을 회복한 사례도 100만 명 중 1명꼴로 보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말기암 환자도 예상을 뒤엎고 장기간 생존하는 경우가 있다. 6년 전 유방암 세포가 온몸으로 전이돼 말기 판정을 받은 N씨(54·여)는 항암 치료로 고통 속에 몇 달을 보내기 싫어 당장 고통을 주는 유방암 덩어리만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당시 “여명이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다. 하지만 N씨는 온몸에 퍼졌던 암세포가 사라졌고 직장을 다시 다니고 있다. N씨의 상태에 대해선 의학계에서 아무런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식물인간보다 더 안 좋은 상태인 뇌사(腦死)에 가까이 갔다가 살아난 경우도 있다. 5년 전 뇌에 이상이 생겨 혼수상태에 빠진 Y군(13)은 응급실에 실려 왔다가 뇌사에 가깝다는 판정을 받았다. 석 달 뒤 Y군은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회복됐다.

의료계에서는 김씨의 사례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본다. 서울아산병원 이종식 교수는 “지난해 10월 김씨를 봤을 때 자발 호흡 없이 기계에 의지해 호흡을 하고 있었고, 이런 상태라면 보통 호흡기를 떼면 숨을 거둔다”며 “그러나 자발 호흡이 없는 상태에서 호흡기를 뗐을 때 며칠 더 사는 건 의료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로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씨를 둘러싼 논란이 존엄사(尊嚴死) 판결의 본질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호흡기 제거 후에 환자가 연명하느냐 여부는 이번 판결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논의”라며 “최종 변론 당시 대법관들은 환자의 회생 가능성과 환자가 원치 않는 연명치료를 하는 게 옳은 것이냐에 대해 주로 의견을 청취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간의 수명은 불확실의 영역”이라며 “존엄사를 인정하는 그 어떤 나라도 환자의 기대여명 여부를 연명장치 중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대법 판결에 앞서 김씨를 위해 최종 공개변론을 했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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