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치개혁 구상]인적 물갈이·제도 밭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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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취임후 정치권을 일단 '풀어' 놓았다.

경제상황이 원체 다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국민회의에 정치개혁을 주문하는 등 고삐를 조이기 시작했다.

金대통령의 '정치 구조조정' 의지는 상당히 강력해 보인다.

그에 따른 '실익' 도 그러려니와 그래야 '총체적 개혁' 의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은 "사회전반에 걸친 개혁 드라이브를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 고 밝혔다.

노사 (勞使)에 고통분담과 철저한 변신을 요구하면서 그간 '개혁의 최우선 대상이면서도 무풍지대' 라는 비판을 들어온 정치권을 가만 놔둘 경우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金대통령은 정치권의 어디를, 어떻게 개혁하려 하는 것일까. 사람 물갈이와 제도 쇄신으로 집약된다고 여권 핵심 관계자들은 말한다.

金대통령은 지난 16일 지방선거 당선자대회에서 "개혁인재를 키워야 한다" 고 강조했다.

정치권 세대교체를 비롯한 인적 (人的) 청산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것은 정계개편을 확실히 하겠다는 뜻도 된다.

그런데 개편대상은 야당만이 아니라는데 여권 고위 관계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여권내에도 정리될 사람들이 꽤 있다는 얘기다. 물론 시간은 좀 걸릴 것이라고 한다. 16대 총선이 2000년에 있기 때문이다.

金대통령은 16대 총선을 통해 정치개혁을 완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공천과정에서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인재 풀 (pool) 을 보강하고, 그 수준도 높이는 작업이 이때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호남출신 현역의원들의 대거 공천탈락설이 국민회의 주변에서 나돌고 있다.

그간 金대통령이라는 '핵우산' 밑에 있다는 이유로 의정활동을 소홀히 했거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엉터리 공천으로 낭패를 본 호남 의원들이 1차 정리대상이라는 등 설이 분분하다. 한나라당에서 입당한 의원들중에서도 제거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당장이야 여소야대 (與小野大) 타파를 위해 대접하면서 영입했지만 공천때는 당선가능성뿐 아니라 개혁성도 점검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런 관측을 하는 고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金대통령은 한나라당도 개혁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치개혁이 열매를 맺으려면 여야가 함께 변해야 한다" 고 단언했다.

金대통령은 야당의 개혁, 특히 인적 청산을 위한 수단도 갖고 있다.

사정 (司正) 이 그것이다. 실제로 20일부터 대대적인 사정활동이 시작됐다.

청와대는 "정치인 비리가 드러나면 여야 관계없이 엄정하게 다스릴 것" 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그간 몇몇 문제 리스트에 올라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중 몇사람은 다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정으로 개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표적사정.정치보복 시비 등에 따른 비판여론이 부담스러울 수 있고, 야당의 반발도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金대통령이 사회통합.동서화합형 정계개편을 희망하는 만큼 사정을 해도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을지 모른다.

제도개혁에 대해선 金대통령이 이미 정답을 제시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지구당 폐지 검토, 공직선거 출마자의 공천방식 재고 (再考) , 국회운영 개선 등이 그것이다.

金대통령은 지역분할 구도에 발목잡혀 있는 정치후진성을 극복하고, 돈을 덜쓰면서 국회기능은 강화하는 정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있다.

정당명부제가 됐다고 해서 지역정당 구조가 완전히 타파되는 것은 아니며, 소선거구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지구당을 없애봐야 비슷한 조직이 또 생겨 돈쓰는 정치구조는 그대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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